그는 아무말없이 뒤돌아선채로 가만히, 그렇게 서있었다.
그녀의 부름에도 그저 그렇게 그녀를 등지고서 서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타카스기. 네가 어째서 여기있는거냐.
내일은 중요한 날일텐데."
그녀가 낮고 싸늘하게 말하자 그는 언제나 처럼
나는 그저 모든 것을 부술 뿐이다라며 말하고 있었다. 그저 그 자리에 서서.
"대체 뭘 부순다는거냐.
정말 이 세상을 부수겠다면, 어째서......"
"그건.........." -신스케
그는 서서히 몸을 틀었다. 그녀는 긴장감에 침을 한 번 삼켰다.
너무나도 고요한 밤.
그리고 그 밤과 마찬가지로 고요한 다리위에선
꿀꺽하는 소리가 미치도록 크게 들렸다.
이윽고,
그가 몸을 완전히 틀어 그녀와 마주보았을 땐
그녀의 몸속에서 무언가가 끓어오르는 듯 했다.
"오에도 청소년 건전 육성조례 개선안
반대-" -헨페이타
그것은 다름 아닌 엄청난 분노와 살의.
음성변조기를 들고서 외쳐대는 타케치 헨페이타.
"야 이 새꺄!! 사람 헷갈리게 하고있어!!"
그녀는 빡쳐선 그대로 검집으로 타케치의 머리를 후려쳐 기절시켰다.
그 소리와 그녀의 고함소리에 보초들 몇몇이 다리로 왔다.
그녀는 작게 망했군. 이라고 말하고선 한숨을 내뱉은 뒤
그대로 달리기 시작했다.
"머....멈춰!" -보초1
"멈추라고?"
그녀는 검을 살짝 돌려선 칼등으로 바꾼 뒤에 하나 둘 씩 쳐나갔다.
"그런 건 너보다
약한 상대한테나 하는거야."
그렇게 보초들을 전부 때려눕혀 놓고서
다시 창고로 가려던 그 순간,
다리위에 울려퍼지는 여러번의 총성.
그녀는 피하긴 했지만 왼팔이 아주 살짝 스쳐 검은 피가 찔끔 맺혔다.
"감히 탈출한 것도 모자라
귀병대에게 대항하다니!! 죽고싶냐, 네 놈!" -마타코
"하! 웃기고 앉아있네!
난 놈이 아니라 년이거든? 그리고 가둬놓으면
탈출하고 싶은게 생물의 심리라고, 알어?!"
마타코였다. 이거 귀찮게 됬다고 생각하며 그녀는 다시 검을 돌려선
칼날로 공격방향을 바꾸었다.
"아무리 신스케님의 옛 친구라고는 해도
더 이상은.....!!" -마타코
순간 소리치던 마타코의 노란머리가 바람에 흩날리더니
그녀가 어느새 마타코의 뒤까지 와있었다.
쿠로의 속도를 처음 본 마타코는 그대로 굳어있다가 이내 고개를 돌렸다.
"더 이상 뭐?"
"어....언제.......!" -마타코
그녀는 이이상 싸워봤자 시간낭비라는 생각이 들어
씩씩거리며 쫓아오는 마타코를 빠르게 따돌리고서
곧장 창고로 향했다.
'아.....다리가 부서질 것 같아.'
한 동안 갇혀있다 너무 오랜만에 속력을 낸 탓일까.
그녀는 잠시 멈춰서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걷다가 화물칸에 도착할 즈음,
사람이 많은 것 같아 근처에 있는 작은 방안으로 들어갔다.
"어디........여기가 좋겠다."
그리고는 그대로 천장에 검을 꽂아넣어 부숴버렸다.
구멍이 생기자 그 위로 올라가선 먼지 때문에
기침을 몇 번 하다
작은 방안에 있던 박스에 들어있던 작은 천 하나로 입을 막고서
그대로 천장을 통해 창고까지 향했다.
'여기서 쭉 직진 이랬는데?'
엉금엉금 기어가는 꼴이 웃기긴 했지만
계속 직진 하다보니 무슨 말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검을 살짝 빼들어 천장에 구멍을 내고 그 사이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뭘 찾으시는 건가요?" -귀병대1
"아아, 좀 찾는게 있어서 말이지." -신스케
너무나도 익숙한 목소리였다.
아까도 들었지만 꾸며낸 목소리가 아닌, 진짜 그의 목소리였다.
눈에 들어오는 짙은 보랏빛과 그 날카로운 녹안의 섬뜩함.
그리고 그 섬뜩함 안에 숨은 의문.
그래. 정말 그였다. 타카스기 신스케.
그것도, 친구가 아닌 적으로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