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날 기억하고 있었잖아........"
그 말에 카무이의 눈이 크게 떠지더니 이내 그녀의 목을 놓았다.
들리다시피 매달려있던 그녀는 자리에 철푸덕 주저앉아있다가
비틀거리며 일어나선 다시 씨익 웃어보였다.
"어차피 나는 언젠가 검은 연기가 되어
흩어질 몸이야. 그전에 나는 내 흔적을,
그리고 완전히 죽지 않도록 남겨둘거야."
카무이는 처음보는 놀란 표정으로
그런 그녀를 보고 있었다. 그녀는 다시 검을 손에 쥐었다.
"그 다음에는 비로소 영원한 안식에 들겠지.
그것이 언제가 되던간에,
그 누구도 날 지켜줄 순 없단 걸 알아.
그래서 난............"
그녀는 다시 카무이의 위로 검을 치켜들고서
아까와 같은 섬뜩한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싸울거야. 그 모든 것을 지키기 위해."
다시금 방 안에 굉음이 울려퍼지고.
카무이는 뒤로 피했지만
왼쪽팔이 살짝 베여 검은 치파오를 검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푹 꺼진 바닥에서 검을 빼낸 그녀를 멍하니 보던 카무이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조금은, 알 것 같기도.' -카무이
카무이는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미소지었다.
이제야 알았다. 그녀가 한 없이 빛나고, 또 부러웠던 이유를.
자신은 「야토」라는 이유하나로
모든 것을 얼버무리며 싸우고 죽여왔지만,
그녀는 「흑영」과「쿠로」라는 이유를 가지고서도
그것의 무게에 의존하지 않고서 싸우고 지켜왔다.
똑같은 싸움과 살인이지만. 목적이 달랐다.
그렇기에 그녀가 그토록 빛나보였을까.
잡을 수 없는 빛 따위는, 차라리 부숴버리면, 꺼뜨려버리면 된다고.
그 생각을 한게 대체 언제부터 였을까-
"미안. 안되겠다." -카무이
카무이는 자신이 뭐하는거냐는 생각에 피식 웃고선
그녀를 향해 옆에 떨어져있던 술 항아리 하나를 던졌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검을 휘둘러 항아리를 깼고, 그대로 술을 뒤집어썼다.
"이런.......!"
물에 약한 그녀는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다리와 온 근육에 힘이 풀려간다. 술도 물이다.
술의 향과 알싸한 느낌에 서서히 마비되어가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고,
그런 그녀를 내려다보며 웃을 뿐이었다. 그는.
"이렇게라도 안하면,
내가 지키고싶은 걸 지킬 수 없어." -카무이
어째서였을까.
순간, 카무이의 그 미소가 너무나도 슬퍼보였다.
그녀는 그제서야 어느정도 정신을 차리고서 애써 잠들지 않으려 힘썼다.
하지만 이내, 힘이 빠져 몸이 앞으로 고꾸라졌고,
카무이는 그녀가 쓰러지기 전에 한 팔로 그녀를 받힌 뒤 안아들었다.
이번에는 그녀의 검까지 챙겨주었다.
"크윽....죽겠군.... 어이, 의사부른다?" -아부토
"마음대로." -카무이
의사를 부르는 다친 아부토를 뒤로하고서
카무이는 계속 슬픈 듯, 참는 듯한 미소를 띤 채 그녀를 안아들고서
다시 그녀의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방에 다다르자 그대로 그녀를 바닥에 내팽겨쳤다.
"큭.....! 빌어.... 먹을....."
떨어진 그녀는 천천히 몸을 움직여선 최대한
그에게서 벗어나려 뒤의 벽에 달라붙어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렇게도 만나고 싶어? 그렇게도 벗어나고 싶어?
그래. 그럼 나도 부숴줄게. 소중한 것들을 전부 부수고,
서에게 나밖에 남지 않게 하면 돼?
그럼 날 좀 바라봐 줄거야? 응? 응?" -카무이
웃으면서 서슴없이 내뱉는 말에 그녀는 조금 움츠러들었다.
카무이는 벽에 등이 달라붙은 채
미세하게 떠는 그녀의 앞에 쭈그려 앉아 시선을 맞추었다.
그리고는 두려워하는 그 시선에
그녀의 볼에 살짝 피 묻은 손을 가져다대고서 쓸어내렸다.
"떨지마............" -카무이
그리고는 그대로 떨고있는 그녀의 뒷통수를 거칠게 휘어잡아서는
말하려던 그녀의 입을 자신의 입으로 막아버렸다.
너무나도 강력한 그의 악력과
아까의 술때문에 정신이 차려지지 않던 그녀는 계속 그대로 있다가
겨우찾은 틈에서 카무이를 있는 힘껏 밀쳐냈다.
"이거...놔.....저리가....
어떻게.....그런 짓을 해놓고 뻔뻔하게...."
갑자기 일어난 이 상황과 그의 행동에 그녀는
숨을 헐떡이다가
어느새 그의 뺨을 후려친 뒤였다.
카무이는 고개가 오른쪽으로 돌아간 채 한참 있다가,
그녀의 눈물을 보고서 표정이 다시 싸늘하게 굳었다.
"있잖아.
나도 보고싶어. 웃는 얼굴.
은발의 사무라이씨에게만 보여주던
그 상냥한 얼굴. 나도 보고싶어." -카무이
눈을 싸늘하게 뜨고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그의 시선에
그녀는 그대로 경직된 채 있었다.
이윽고, 다시금 딱딱한 음성이 와닿았다.
"근데.......안되잖아.
나는 가질 수 없는거잖아.
그러니까 부숴버릴까 생각도 했어.
하지만 지금은 달라. 한 번이라도
좋으니까 날 제대로 봐줬으면 해." -카무이
카무이는 그러더니 아까의 그 슬픈 미소를 입가에 띠고서
벽에 닿아있던 그녀의 다리를 지그시 보더니
미안....이러고 싶진 않았는데.....라고
나지막히 말하고서 그녀의 오른 발목을 콱 쥐었다.
그리고 대략 몇 초 뒤에, 무언가 '뚝'하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부숴졌다. 필시 발목이 부숴진 것이다.
"끄아아악!!"
"이렇게 라도 안하면 또 도망갈거잖아." -카무이
"크으... 흐읍......"
그녀의 눈에서 물 한 방울이 흘러내린다.
"우는....거야?" -카무이
아까의 싸움과 긴장, 그리고 극도의 스트레스와 아까 술에 맞은 것 까지.
정신력과 육체. 모든 것에 한계가 온 걸까.
그녀는 말을 전부 잇지 못하고 그대로 고개를 떨구었다.
카무이는 그런 그녀의 손등에 살짝 입을 맞추고서
미안하다고 다시금 읊조린 뒤 그녀를 안아들어 침대위에 눕혀주었다.
그렇게 그가 한참을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던 그 때,
누군가가 문을 박차고 들어와선 그대로
카무이의 멱살을 잡았다.
곁에 두고 싶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