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
검을 쥔 두 손에 힘을 주고서,
그대로 비스듬히 휘둘러 앞의 녀석을 베어낸 뒤
검에 묻은 피를 한 번 털어내었다.
"이렇게 많은거야!"
베어도 베어도 끝이 없다.
날도 흐려서 그닥 나오고 싶지는 않았다.
그저, 신스케나 카무이를 찾으려고 했을 뿐인데.
바보같은 자식들. 이 근처에 일반인들이 사는 마을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안하는건가.
카무이는 해적이라 그렇다쳐도......
신스케까지 그럴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사.....살려줘!" -천인1
살려달라는 소리와 누군가를 죽이는 살점과 근육이
날붙이에 의해 도려내어지는 소리가 교차한다.
검은 칼날에 들러붙는 것은 검붉은 피.
그렇게 인상을 쓰면서도 적을 베어나가던 그 때,
"끈질기오." -반사이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눈 앞에서 희끗거린 몇 가닥의 현.
그리고 한 켠에서 또 누가 쓰러지며 피를 흩뿌린다.
몇 번을 봐도 싫은 광경에 눈을 딱 감으며
내 뒤에서 달려드는 녀석을 베어버렸다.
서걱하는 이 느낌이 손끝으로부터 전해져온다.
".....아가씨?" -반사이
그리고 그렇게 검게 침식되어 가는 듯한 나를 불러세우는
그의 목소리에 나는 눈을 뜨고서 뒤를 돌아보았다.
"반사이!!"
그가 너무 반가와서 나는 전쟁터라는 것도 잊은 채
달려가선 그에게 와락 안겼다.
당황한 듯한 그였지만 내 뒤에서 적이 오자
나를 끌어안아 당기며 현으로 적을 잡고서 그대로 베어버렸다.
"어째서 아가씨가 여기있는 것이오!" -반사이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라구요!
"우선, 어떻게든 안전한 곳으로......" -반사이
내 어깨를 부여잡고서 흔들며 말하는 그의 뒤로
드리우는 커다란 그림자에 나는 바로 검을 꽈악 쥐었다.
"반사이, 뒤!"
그리고 그대로 반사이의 팔을 당겨 끌어낸 뒤에
그의 뒤에 있던 커다란 천인의 다리를 벤 뒤 그대로 내리쳤다.
큰 녀석은 균형부터 무너뜨리라고 알려준 즈라가 생각나서
잠시 피식 웃다가 바로 반사이에게 말했다.
"당신들이 안전해지기 전까지는, 싫어요!"
그런 와중에도 공격을 해오는 탓에,
반사이와 나는 등을 맞댄 채 검을 휘두르며 설전을 계속했다.
그렇게 계속된 내 반박에 이내 반사이가 자신의 코트를
황급히 벗더니 내 머리위로 던져 씌워주며 소리쳤다.
"곧 비가 올 것이란 말이외다!!" -반사이
그 한마디에, 나는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내 머리위에 있는 그의 코트.
반사이의 속도 모른 채 악을 쓴 꼴이니.
반사이는 멍하니 서있는 나를 대신해 다른 녀석들의
공격을 막아내었다.
"아무튼, 인근의 마을이 있을터이니 그곳에서 비를 피하시오.
지금 배에 가는 것은 더욱 위험하오.
그러니, 어서!" -반사이
"알았어요. 신스케를 부탁해요. 그리고......"
할 수 없다. 오히려 걸림돌이 될 것이다.
우선은 물러나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그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귓가에 읊조렸다.
".......조심해요, 반사이."
그의 작은 끄덕임에 나는 곧바로 발에 힘을 주었다.
최대한의 속도로 빠져나가야한다.
지체할 수 없다. 이곳에는 비를 피할 곳이 없어.
"배신자가 도망친다!" -천인1
그 말에 나는 여기서 벗어나는 동안에는 가급적
싸우지 않겠다는 맹세를 와장창 깨부수고서
뒤를 돌아보았다.
무언가 이상함이 느껴져 자세히보니 천인들의 사이에
작은 무언가가 보인다.
나는 그쪽으로 빠르게 달려 위로 뛰어올라 바로 검을
검집에서 빼어 손에 들었다.
"난 배신자도 아닐뿐더러,"
그렇게 그대로 검의 손잡이로 머리를 쳐 기절시킨 뒤
나머지 녀석들도 칼등으로 베어 다치지 않게 기절만 시켰다.
"너희같은 쓰레기도 아냐!"
베지 않은 이유는, 적어도 이런 아이에게 눈 앞에서
피를 흘리며 누군가가 쓰러지는 꼴은 보여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괜찮니?"
아무래도 아까의 녀석들 때문에 돌아가지 못한 듯 하다.
이 근처에 있다는 마을에 아이 이려나.
"마을의 아이지?"
다행이다. 구할 수 있어서.
그리고 마을을 생각보다 쉽게 찾을 수 있게 되서.
하지만 어째선지 그 여자아이는 내가 손을 뻗자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지....지구인......" -아이
귀병대와 같은 지구인이라 생각하는 걸까.
나는 딱히 해치려는 것이 아닌데.
그 만큼 다른 이들이 이 곳에 많이 왔었다는 것.
나는 망설이지 않고 검으로 내 팔을 얕게 베었다.
주륵하고 흐르는 검은색의 피와 금방 아무는 상처에
아이는 놀란 듯 흠칫했다.
"걱정마. 나도 너와 같은 천인이야."
애써 웃으며 안심시키자 내가 다시 다가온다.
베지 않은 다른 쪽 팔로 아이를 안아들었고,
눈높이를 맞춘 뒤 말했다.
"비가 오면 나, 죽을지도 몰라.
그러니 마을까지 부탁해."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그래.' 라는 한 마디를
하고서 곧장 아이의 손가락 가리키는
방향으로 달렸다.
검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