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략 10여년전. 양이전쟁당시.

하늘은 모든 것이 잿빛이고 대지는 모든 것이 붉은 빛이다.
피와 시체, 부러진 검이 흩날려있는 드넓고 황폐한 대지에선
어떠한 생명체도 살아있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런 피와 시체, 모든 난잡하고
잔인한 것들이 난무하는 그 전쟁터에 어떤 사람 두 명이 서있었다.

"우와.....다 죽어있네." -카무이

꽤나 어려보이는 안보이는 분홍빛에 노을을 곁들인 듯한
머리카락을 땋아내린 남자아이.
그리고 그 옆에 있는 남자아이의 스승으로 추정되는 남자.
둘 다 우산을 쓰고서 피비린내나는 전장을 둘러보고 있었다.

호센이 저쪽으로 가자 어린 카무이는 생글생글 웃으며 반대쪽으로 향했다.
시체와 피를 밟으며 너무나도
즐거운 표정으로 가는 모습은 전혀 어린아이에 맞진 않았지만.

".......아무도 없네." -카무이

카무이는 계속해서 즐거운 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그 아이의 뒤로 무언가 섬뜩하고 차가운 살기가 드리웠다.
일순간 카무이의 웃는 얼굴이오싹함을 느끼고서 싸악 변했다.

'누구?' -카무이

이내 다시 웃으며 아까의 오싹함이 느껴진 쪽으로
종종거리며 뛰어가는 그 아이는,
이내 피투성이인 시체들 사이에서 누군가를 보았다.
그 누구도 살아있지 않은 그 가운데에서, 유일하게 살아있는 자.

'검은 사람이다.' -카무이

그 시체 사이에서 붉게 물들어버린 대지위에 우두커니 앉아
멍한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누군가가보였다.
검은색의 머리. 검은 눈동자. 갑옷위에 걸친 옷도 검은색.
머리에 두른 띠와 바지만이 하얀색인. 피마저 검은색인.
그런, 사람이었다. 피에 물든 검은색의 칼을 손에 쥔채
잿빛의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있잖아-" -카무이

카무이가 겁없이 다다가서 부르자 이쪽을 스윽 돌아본다.
멍한 표정이 조금은 사납게 뒤틀렸다.

"있잖아, 형. 뭘보고 있었어?" -카무이

카무이의 물음에도 멍하니 그를 바라보던 그 사람은
이내 겉으로는 싸늘하면서도 속으로는
따뜻함을 가진 소녀의 목소리로 말했다.

"......나 여자야. 남장한거지."

그 말에 카무이는 싸우기 적합하긴 하겠네- 라며
다시 생글생글 웃어보였다. 다시 한 번 묻자 그녀는 다시
초점없는 멍한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하늘을.....보고있었어."

"왜?" -카무이

"비가 오나 해서......"

카무이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멍하니 있던 그녀는 잠시 멈칫하더니
갑자기 카무이를 날카롭고 싸늘한 눈매로 째려보았다.
그리고 그 입에서 나온 묵직한 한마디.

"너......야토냐?"

그 말한마디에 카무이의 표정이 웃음을 띤채로 싸하게 변하였다.
애써 그 기색을 감추려했지만 그녀의 눈빛에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어라....?' -카무이

카무이는 그제서야 그녀의 검은 칼날이
자신의 목에 들어온 것을 알았다.
말도 안돼. 인간은 이렇게 빠를 수 없어.
야토의 눈을 피할만큼 이렇게 빠를 수 없어.
굳어있는 카무이를 보던 그녀는, 피식 웃으며 검을 거두었다.

"장난이야."

다시 아까처럼 옅은 미소를 띠는 그녀.
그녀는 카무이의 어깨를 검집으로 살짝 찌르며
가라고 말했고, 카무이는 잠시 서있다가 손을 흔들고는
천천히 다른 곳으로 향했다.

".......데..........."

그것도 잠시. 뒤쪽에서 들리는
아까 그녀의 읊조림에 걸음을 우뚝 멈추었다.
울고싶지만 울지못하는 그런 목소리였다.
아까의 살기도 미소도 거짓으로 만드는 목소리.

검은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