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왠지 싫은게 떠올라버렸구만.' -긴토키
저번에도 그랬다. 전쟁이 끝난 뒤
산책을 하고 오겠다면서 홀연히 떠나버렸다.
그 때, 왜 그 말을 못했을까. 그는 후회했다.
"긴토키......?"
"그렇게......." -긴토키
그녀는 그 때처럼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절벽의 끄트머리 쯔음에 앉아선
바다와 밤하늘, 그리고 달과 별을 보고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그는 그 날에 하지 못했던 말을.
후회했던 말을 입밖으로 꺼내 외쳤다.
그녀에게 닿도록-
"어딜 가려면 말 정도는 하고 가란 말이다, 요녀석아." -긴토키
그 날도 그랬다. 슬픈얼굴로 애써 웃으며 그들의 곁을 떠나갔다.
그렇기에 그는 이번엔 확실히 말했다. 다시는 사라지지 않도록.
잡은지 안 잡은 건지도 모르겠지만
이대로 놓치면 검은연기가 되어 사라질것만 같았으니까.
".......뭔 소리야? 난 어디에도 가지 않아."
그녀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그를 보고 말했다.
긴토키는 그 미소에 드리워있는
슬픈 그림자에 아무말없이 그녀의 옆으로 가 앉았다.
"달이.....예쁘네."
그녀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긴토키도 그녀와 똑같은 풍경을 보았다.
그저 빨려들어갈 것만 같다.
그녀는 이런 풍경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너 말야, 진짜 나쁘다고.
남과 한 약속을 잊어선 안되는거야."
"뭐가. 일부러 휴가지도 바다로 했는데." -긴토키
그녀는 그러자 그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고서
따지듯이 말했다.
"내가 바다에 가자고 한 이유! 하여간에 긴토키는 긴토키인가....."
"......대충은 기억한다고? 마지막 말 뭐냐. 어이." -긴토키
"하여간......"
그녀는 조금은 화가 풀린건지 다시 고개를 돌리고서
바다의 수면에 비춘 달의 달그림자를 보며 말했다.
"바다는 지구 상의 모든 생물의 생명의 근원지라도,
나의 생명의 근원지는 될 수없잖아."
그녀는 그러면서 바다는 그렇게 고요하게
많은 세월을 지내왔다고 말했다.
긴토키는 그 말들의 의미를
전혀 알 수 없었지만, 그 의미가 뭐냐고
되물을 수 없었다. 왠지 모르게
슬퍼보이는 그 표정 때문에.
"난 그다지 물을 좋아하지 않지만, 바다는 그나마 좋아해.
왠지 모르게 우리들과 닮았거든."
긴토키는 그제서야 그 말의 의미를 알아차렸다.
그래. 그녀가 말하는 우리들은 '괴물'.
모두의 업과 이름의 무게를 짊어지고서
자신의 몸을 기꺼이 피로 물들여가는 것.
그것이 백야차와 흑영
그들의 사명이자 걸어왔던 길이다.
"하긴..........그래서
바다를 좋아하는건가, 흑영 양~" -긴토키
그의 말에 그녀는 옆에 있던 돌맹이 하나를
바다를 향해 던졌다. 달그림자가 조금 일렁이며
퐁당하는 소리가 청명하게 울려퍼졌다.
"긴토키. 난, 그 이름을 좋아하지 않아."
그녀는 자기 자신을 스스로 끌어안는 듯 했다.
그리고선 고개를 숙인채 말했다.
"생각 나버려. 전장에서의 썩은 냄새와 피비린내.
어디선가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비명소리.
내 손에, 온 몸에 튀는 붉은 피의 뜨겁고 끈적거리는 느낌.
그것들이 마치 피처럼 마구 달라붙는 것 같아서 싫어."
긴토키는 아무말 없이 그녀의 뒤로 가선
쭈그리고 앉은채 떨고있는 그녀를
안아주었다.
그녀는 그의 행동에 아무런 반항없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칼로 무언가를 베고 죽일 때
칼에 느껴지는 뼈의 마찰,
근육이 끊어지고 살점이 도려내지는
그 느낌들이 나를 더욱 미치게 만들어."
".......그건 나도 마찬가지입니다만-" -긴토키
그녀는 뒤에서 자신을 안아주는
그의 손을 꽈악 잡았다. 그 떨림이, 그에게 까지 전해졌다.
"베도, 베도, 계속 부족하다고 말해. 나 자신도 모르게 검은 피가 끓어.
종족의 본성을 이겨내려고 해도 베어야 하는 것은 끊없이 많았고,
계속해서 베어도 남는 건 허무함 뿐이었어."
마치 바다 같았다. 물이 꽉 차있을 땐 아름답게 빛나도,
썰물로 물이 전부 빠져나가버리면 마치 비어버린 듯 하니까.
그런 허무함이었다. 그녀의 손끝에서 전해지는 허무함은.
"사실 더 이상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그래서 난 흑영이라고 불리는 걸 썩 좋아하지 않아."
긴토키는 약간 촉촉해진 그녀의 눈동자를 보고서
그녀의 옆으로 가 앉았다. 그리고선 하늘의 달을 보며 그녀에게 말했다.
"그럴 땐 이렇게 생각해." -긴토키
그는 그러더니 이번엔 그녀의 얼굴을 마주보고서
씨익 여유롭게 웃었다.
"바닷물이 썰물이 되어 밀려나가듯,
가끔은 넘어질 때도 있지만," -긴토키
긴토키는 멍하니 있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언제나 다시 밀물은 들어올테니까.
미래는 밝으니까." -긴토키
"긴토키......."
"지금 우리가 다시 만난 것처럼, 말이지." -긴토키
그리고는 달빛이 너무나도 환하게 빛나 모든 것을
달그림자로 집어삼키는 그 순간에,
그는 그대로 그녀를 안아주었다. 그리고선 살짝 웃으며 말했다.
"자, 자, 중2병은 이제 졸업하자고 (-) 어린이?" -긴토키
"닥쳐, 긴토키. 이대로 바다 위를 날게 해준다?"
"오이, 농담이지?" -긴토키
"아까의 네 말이 농담이라면 그렇게 해주마."
바다가 다시금 잔잔해지고, 달그림자가 일렁인다.
아파 낳아온, 아파 지켜온 이들에게 버림받고서
이리저리 방황하던 제비한 마리가 다시금 제자리를 찾는다.
바다의 노래가, 바다의 파도소리가
그들의 심장소리와 섞여 바다의 심장소리를 만들어낸다.
왜 이렇게 멀리 돌아왔을까.
그녀가 지키려던 건,
그가 지키려던 건,
처음부터
그 무엇하나 변하지 않았었는데.
오늘 따라
달이 너무나도 밝다.
현기증이 날 정도로-
검은색 나비와도 같은 여자를 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