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큭.........!"

큰일이다. 큰일이야. 어떻게 해야 되는 걸까. 나는.

"젠...... 장...... 콜록......."

역시나 예상대로 비가 내렸다. 물과 피에 적셔진 몸이 아우성친다.
시야도 이젠 흐리다. 소리도 울려서 잘 들리지 않았다.
어떻게든 검을 휘두르며 싸우고는 있지만, 내가 무엇을 베는지도 모르겠다.

'어떡해야 되는거야........'

이대로 수많은 상처와 물을 뒤집어써서 검은 연기가 되어 사라지는 걸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이미 버린지 오래였다.
지금 내가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어쩌라는거냐구.......!!'

또다시 모든 것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것.
내가 죽어서 모든 것이 나아진다면 몰라도, 지금은 아니다.
내가 여기서 쓰러지면 남은 부상자나 다른 이들이 위험해진다.
그리고, 아직 생사를 알 수 없는 그 세 명까지도.
이미 우리가 졌다는 것은 알고있다. 하지만 적어도 그들에게
다시 살 수 있는 기회정도는 주어야하지 않겠는가.

「더러운 자식」

머릿속에서 아까 그들이 했던 말이 계속해서 울린다.
밉다. 너희들을 죽이고 싶을 만큼 밉다.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이 힘과 몸이, 얼마나 괴로운 것인지 모르는 주제에.
하지만 그 정도는 용서할 수 있다. 그것이 내가 너희에게 하는 최대의 복수.

"하아..... 하아......."

"뭐 이딴 더럽게 끈질긴 자식이...." -천인1

하지만, 절대로 그 자는 용서할 수 없어.
내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간 그 자만큼은.
유키의 복수를, 그리고 빼앗긴 내 어린시절을 위해서라도 난 아직 죽을 수 없다.
그래서 그런지 방금 저 녀석의 한마디에 참지 못하고 피식 웃어버렸다.

"웃어? 니까짓게 웃는다고 뭐가 달라져!" -천인1

"아아, 뭐. 그냥........."

그래. 뭐가 달라질까. 내가 웃는다고, 내가 죽는다고.

"컥........!!" -천인1

"네 녀석들이 전부 내 손에 죽을 거라서 말이지."

내 옆에 너희가 없으면,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까 변하기 위해 나는 너희를 지켜야만 해.
그리고, 날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모두의 복수를 해야만 해.
그러니 아직은 죽지 않아. 몇 번이고, 유령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근데 얘들아 있잖아.

"어.........?"

나..... 어떡하지?

"큭...... 이제야 멈췄군." -천인2

"커헉........!!"

이젠 더 이상 몸이 움직이지 않아.

털썩하는 소리와 함께 시야가 한 차례 흔들렸다.
가뜩이나 비를 맞아 움직이기도 힘들고 시야도 흐렸는데.
이젠 그 무엇도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다.
아픔도 빗속에 파묻혀 느껴지지도 않는다.
그렇게 흐려져가는 시야 속, 보이는 단 한가지.

'어라...... 환각인가........'

납빛 뿐이던 이곳에 보이는 단 하나의 은빛.

'긴토키가..... 왜 여깄지.......'

누군가가 나에게 옷을 덮어주었다. 비를 덜 맞자 아예 보이지 않던 시야가
조금이나마 보이기 시작했다. 어래? 이거.....

"(-)....!!" -신스케

"정신이 드는가!" -카츠라

신스케의 진바오리? 신스케가 내게 자신의 옷을 덮어주고선
나를 안아서 천천히 앉혔다. 고여있던 검은피가 입밖으로 나오자 조금은 숨쉬기가 편해졌다.
내 앞에 보이는 건 다름 아닌 천인들을 전부 쓰러뜨리는 긴토키.
그래. 환각이 아니었구나.

"(-)!!" -긴토키

왤까. 다행이라는 생각부터 드는 것은.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그대론데, 점점 모든 것이 편해진다.
긴토키도, 신스케도, 즈라도. 다시 내 곁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안도감에 젖어 눈물이 나려던 그 때, 검은 연기가 희끗거리며
몸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안돼!"

나는 나를 안고있던 신스케를 밀쳐내고서 비틀거리는 몸을 가누며
그 세명에게서 떨어졌다. 그들이 걱정하며 다가오자, 나는 검을 휘둘렀다.

"왜 그러는거야! 너 지금 움직이기도 힘들.....!" -긴토키

"오지마! 너희가 다친단 말야!"

"그게 무슨...... 읏.....!" -신스케

아아, 안돼. 역시나다. 내 몸에서 나온 검은 연기에 닿은 신스케의 손에
작은 생채기가 나있었다. 모두가 놀라는 눈치다.
참아오던 눈물이 끝내 터져나왔다.

검은색과 붉은색의 피를 뒤집어쓴 채 검을 휘두르는, 검은 그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