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 지원은 아직 멀었나! 전방에서의 연락은!!"

"무리입니다, 대장! 이쪽 후방 부터 공격하는건
예상범위 밖인지라........!" -흑영대1

"젠장!!"

황량한 대지에서. 잿빛으로 드리운 전장에는
붉은 피와 시체의 살점, 그리고 비명만이 나뒹굴 뿐이었다.
짜증나. 싫다 싫어. 하지만 베어야한다. 그래야 하나라도 더 산다.

'언제 오는거야........!'

어째선지 오늘은 적들이 전방이 아닌 후방부터 공격하지 시작했다.
후방에서 대기 하던 사람들은 흑영대와 몇몇 양이지사들.
즉, 그들이 대장이라 부르는 검은머리와 옷의 사내는 나였다.
검은 칼날을 휘두르며 전장의 가운데에서 적들을 말살하는 자.

"조금만 더 버텨! 전방에서 지원이 올 거다!"

그 검은 갑옷과 칼날, 그리고 그 머리카락을
피에 물들이며 적진을 뛰어다니는.
그리고 모든 것을 베어나가며 그림자처럼 뒤를 지켜주는 자. 흑영.
그렇게 불리우는 나이기에 더욱 검을 휘둘러야했다.

'젠장.......어떡해야하지.....?
이 자식들은 대체 언제오는거야......'

하늘이 심상치가 않았다. 비라도 오려는 걸까.
이대로 대장이 쓰러지면 흑영대는 전멸이다.
그걸 나도 알기에 얼마 전 다친 곳의 통증을 참아가며 검을 휘둘렀다.
나중에 이거 알면 그 넷, 또 잔소리 하겠지.....

"대...대장......크헉!!" -흑영대1

"안돼!!"

여기저기서 나를 부르며 천인들의 손에 죽어갔다.
수가 점점 줄어들 즈음, 천인들 중 조금 세보이는 녀석이
나와 검을 맞댄채 읊조렸다.

"이거이거....... 네 녀석은 인간이 아닌 것 같은데." -천인1

"닥쳐."

젠장. 들킨 걸까. 저 녀석의 검에 스친 팔의 상처.
조금 묻어난 피 탓인 듯 했다.
.....죽여야한다. 안 그러면 정체가 탄로나.

"인간 중에는 검은 피가 없지." -천인1

"닥치라고, 말했다."

나는 그대로 그 녀석을 벤 뒤 그대로 쓰러뜨렸다.
아직 숨이 붙은 걸까. 피를 토해내며 말을 잇는다.

"흑영. 너는 그저 그 피에 굶주려
같은 천인을 베어나가는 괴물이다." -천인1

순간 눈이 움찔했지만 나는 그대로 그것의 목을 베어버렸다.
그리고는 아까보다 더 미친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네가. 네 녀석이 뭘 알아.
진짜 괴물이 뭔지 알기나 해?

그렇게 피로 물들어버린 대지에.
비가 내려 모든 것을 씻어내릴 즈음에는.
죽지 못하고 고통에 신음하는 천인 몇몇과 그 시체더미 가운데 주저앉아
비를 맞고있는 그림자만이 남아있었다.

"벌써 당한건가.......어이, (-)!!
내 목소리 들리면 대답해! 어이!" -긴토키

긴토키다.
긴토키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눈이 다시 떠졌다.
전방에 있던 양이지사들이 그쪽을 마무리 짓고 이쪽으로 오며
남은 천인들마저 베어내고 있었다.
나도 전의 상처가 도진건지, 아니면 아까 다친 상처에 비를 맞아
괴로운 건지 숨을 헐떡이며 상처를 감싼 채 주저앉아있을 뿐이었다.

"너..........!" -신스케

뒤늦게 나를 발견한 긴토키와 신스케가 이쪽으로 달려와선
내 상태를 살폈다. 그들은 아직 내가 물에 약하다는 걸 모른다.
여기서 약해지면 안돼.

"긴토키.......미안해........"

"말하지마. 상처가 벌어진다." -긴토키

그런데, 노력해도 그게 잘 안돼.
나는 이를 으득 갈고서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목멘 소리로 말했다.

"미안..... 미안하다......."

"그만. 네 탓이 아니다. 우선 돌아가지." -신스케

그렇게 남은 병사들은 다시 진영으로 돌아가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내가 여자이자 천인이라는 사실을 아는건 네명 뿐이었기에,
나는 혼자서 치료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어느 날의 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