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무이 외전 '검은 사람'의 히로인 시점입니다!]

"...........역겹게스리."

주위에 있는 것은 부러진 검과 시체들.
또는 바닥에 박혀서는 서있는 검과 흩뿌려진 붉은 피.
역겨웠다. 무언가를 죽이는 일이야, 어릴 때부터 경험해왔지만
무섭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다만 역겨울 뿐.
그 시체 사이에서 붉게 물들어버린 대지위에 우두커니 앉아
멍한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피에 물든 검은색의 칼을 손에 쥔 채.

'..........아직도, 남았나?'

그렇게 멍하니 있던 그 때, 인기척이 느껴졌다.
온다. 이쪽으로 온다. 동료같지는 않아.

"있잖아-" -카무이

의외로 어린 듯한 목소리에 뒤를 스윽 돌아보았다.
뭐야. 진짜 어린애잖아. 생김새하며 푸른 눈에 우산에......
......야토인가. 멍한 표정을 조금은 사납게 바꾸었다.

"있잖아, 형. 뭘보고 있었어?" -카무이

꼬마의 물음에 멍하니 있다가 이내 원래의 목소리로 말했다.
뭐. 이 정도 대화는 상관없겠지.

"......나 여자야. 남장한거지."

내 말에 야토 꼬마는 싸우기 적합하긴 하겠네- 라며
다시 생글생글 웃어보였다. 좋겠다. 그렇게 웃을 수 있어서.
그 미소가 정말 밝아보여서 새삼 부러워졌다.
이번에는 뭘하고있었냐며 다시 물어오는 그 녀석에게,
난 그저 초점없는 멍한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하늘을.....보고있었어."

"왜?" -카무이

"비가 오나 해서......"

꼬마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멍하니 있던 나는 잠시 멈칫하다가
꼬마를 날카롭고 싸늘한 눈매로 째려보았다.
그리고 입으로 내뱉은 묵직한 한마디.

"너......야토냐?"

그 말한마디의 꼬마의 표정이 웃음을 띤채로 싸하게 변하였다.
꼬마는 그제서야 검은 칼날이 자신의 목에 들어온 것을 알았다.
말도 안돼. 인간은 이렇게 빠를 수 없어.
야토의 눈을 피할만큼 이렇게 빠를 수 없어.
그런 놀란 표정이었다.

'귀찮군.......'

근처를 서성이던 양이지사가 이젠 보이지 않는다.
그럼 야토족이라는 이유로 이 아이를 죽여야하지는 않아도. 되겠지.
굳어있는 꼬마를 보다가 피식 웃으며 검을 거두었다.

"장난이야."

다시 아까처럼 옅은 미소를 띠었다.
나는 꼬마의 어깨를 검집으로 살짝 찌르며 가라고 말했고,
꼬마는 잠시 서있다가 손을 흔들고는 천천히 다른 곳으로 향했다.

".......데..........."

그리고. 아까의 그 미소와 여유에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가 넘어와서. 마치 내 어린 시절 같아서.
비록 나는 저렇게 웃지 않았지만, 언제나 저런 식으로 웃던 누군가가 생각나서.

"나.....강해지고 싶은데......"

유키를 위해. 부질없는 목숨이지만 살아왔다.
이 목숨은 그녀의 것이니까.
쇼요 선생님을 위해. 검을 들고 여자이길 포기했다.
내가 아는 모든 것은 그의 것이니까.

"사실 모든 걸 놓아버리고 싶을 정도로....
힘들어........."

하지만, 한계라는 것이 요즘들어 가끔가다 보이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벨 때마다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아.
어떠한 죄책감도, 감정도 없는 마치 살인기계같아.
아니다. 나는 달라. 나는 감정없고 그저 싸울 뿐인 자들과는 달라.
나는......타이치와 다르다. 그렇게 몇 번이고 부정해본다.

"그럼 놓으면 되잖아." -카무이

그 때, 꼬마가 갑자기 불쑥 옆으로 왔다.
갈 것이지. 나는 언제 괴로운 표정 지었냐는 듯
다시 무표정으로 바뀌어선 아직도 안갔냐고 말했다.

"그럼 왜 싸우는거야?" -카무이

"지키려고. 소중한 것들을."

이 아이도 가족이 있을까.
이 근처에서 다른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아.
같이 온 사람한테서 꽤나 멀리 떨어져나온걸까.
내가 보아왔던 야토들은 몇몇 빼고는 다 비슷했다.
어렸을 때 만났던, '바다돌이'라는 아저씨를 제외하곤.

"너희같은 야토들은 모르겠지."

그 말에 꼬마가 역시 들켰었다는 생각에
아까의 내가 생각나 조금 움찔한 듯 했다.
나는 걱정말라면서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싸우는 이유가 있으면, 더 강해질 수 있어."

"나도 강한 상대랑 싸우는거 좋아해-" -카무이

야토는 야토라 이건가.
꼬마의 천진난만한 말과 표정에 나는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지만.......
너는 싸우는 이유는 없는거네?"

내 말에 더 이상 말을 하지 않는 야토 꼬마다.
그렇게 한참을 생각하던 그 붉은 야토 꼬마는,

"그럼, 정했어." -카무이

"뭘?"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다시 씨익 웃어보였다.

"그쪽이랑 싸워보고 싶어졌어." -카무이

그 말에 나는 빠르게 꼬마의 우산을 검을 휘둘러 튕겨냈다.
아까까지만해도 가만히 있었는데.
너무나도 빠른 속도에 꼬마는 멍하니 있을 뿐이었다.
........좀 오버했나 싶기도 하네.

"까불기는. 니가 크면 야토라서
이길지 몰라도, 지금은 무리야.
적어도 다섯살은 차이난다고?"

나는 재미있는 듯 웃으며 꼬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 손의 상처에서 나온 검은 피가 분홍색의 머리를 물들였다.
아, 더럽혀버렸네. 조금 미안해져서 손을 빨리 거두었다.

"뭐 그냥...........이런 피,
지금은 전 우주에 날 포함해 2명 뿐이지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과 검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아아, 오늘따라 어째 더 많이 엉겨붙은 것 같네.
얼른 돌아가서 씻어내야겠군.

"얼른 가라. 천인을 살려준 걸 알게되면 골치 아파지니까."

"그런 당신도 천인 아냐?" -카무이

그 말에 나는 그저 피식 웃으며 '그러네' 라고 읊조리고는
야토 꼬마를 뒤로 하고서 동료들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신경쓰지말자. 난 그저, 앞만 보고 가면 돼.
옆에 시체가 나뒹구는 핏빛 길이라 해도, 다른 이들을 지키면서.
그렇게.......

:붉은 꼬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