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몸을 제외하면 어느 누구도 찾을 일 없을 병실로 낯선 누군가가 배꼼 고개를 내밀었다.
열린 문틈 사이로 복도의 환한 전구 빛이 새어 들었다.
응? 갑작스럽게 등장한 침입자의 모습에 그가 슬쩍 눈썹을 끌어 올렸다.
날씨만 좋다 뿐이지 실상은 밤새도록 할 일 없이 내내 무료할 예정이었으므로, 그는 순순히 넘겼던 제 머리카락을 도로 탈탈 털어 내렸다. 동그랗게 눈을 홉뜨고 얼빠진 듯 온순한 표정을 지었다. 마지막으로 협탁 위에 벗어 두었던 안경을 집어 쓰자 그는 자신이 평소의 블랙과 완벽하게 똑같아졌음을 알 수 있었다.
……그나저나 저 여자, 메리 멕베스를 찾아 온 것 같은데.
그렇담 이 녀석과도 아는 사이인 건가? 모르는 사이인가?
커다란 눈이 똘망똘망해보이도록 최대한 애써 눈을 깜빡인 그가 이대로 아는 척을 해줄까 아니면 처음 보는 척을 해줄까 속으로 가늠했다.
그대로 몇 초 정도를 가만히 있어주자, 예의 그 알 수 없는 침입자가 대뜸, 배시시 백치처럼 웃음을 흘리는 게 아닌가.
“ 화이튼 벌써 자요? ”
“ ㅡ네에. 아까 낮에 엄청 뛰어 놀았거든요. ”
“ 아하.
혹시 안으로 들어가도 되요? ”
배시시배시시. 힘들지도 않는 지 연신 방긋거리는 품새가 영 의문스럽다.
스물 둘? 스물 셋? 예부터 동양인은 믿기 어려울 만큼 동안인 자들이 많았으니 이 동양인 역시 아마 보기보다 나잇살을 꽤나 먹었을 것이다. 그래봐야 제 기준에선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꼬맹이지만은.
발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조심 병실로 들어온 여자가 자신과 약간의 거리를 두고 간이침대에 걸터앉았다. 화이트 주려고 사 온 거에요. 낮게 속닥이고선 자신에게 종이봉투 하나를 전해 주었다. 크라프트 지 소재의 어느 정도 부피가 있는 봉투에선 따뜻한 온기와 함께 무언가 짭조름한 냄새가 폴폴 풍겼다.
“ 잭 앤 로켓 햄버거에요. 화이트가 이거 한 번도 못 먹었다고 해서 오늘 사다주기로 했었는데… 하필이면 오늘따라 웨이팅이 두 배로 길더라구요. 이렇게 될 줄 알았음 쫌만 더 일찍 갈걸. ”
말하고선, 또 다시 배시시 소리 죽여 웃는다. 아까는 복도의 후광 때문에 몰랐는데 이제 보니 배시시 거릴 때마다 콧등위로 주름이 자작자작하게 잡혔다. 저런 체질 흔치 않은 걸로 아는데. 왠지 모르게 빡빡 문질러 펴주고 싶은 기분을 참으며 손가락으로 슬쩍 봉투의 입구를 벌려보았다. 햄버거 두 개에 프렌치프라이 스몰 하나, 라지 하나, 다이어트 콜라가 두 컵. 서늘한 바깥 날씨를 생각하면 지나치게 따뜻하다. 나를 때 고생 꽤나 했나본데. 생각하며, 윌리엄이 곧 잘하는 ‘ 이 상황이 놀랍고 어리둥절한 ’ 표정을 흉내 내었다. 과연 윌리엄과 판박이였는지 여자는 아무런 의심 없이 혼자만의 재잘거림을 이어갔다.
“ 원래는 블랙이랑 화이트 주려고 두 개 사온거긴 한데…. 식으면 맛없기도 하고, 식사 전이면 이거 다 드실래요? 화이트한테는 다음에 다시 사다주면 되니까. ”
“ 그거 되게 맛있어요! ” 히죽 웃는 꼬락서니에서 제법 뿌듯함이 묻어났다. ……뭐래? 뚱해지려는 얼굴을 애써 다잡은 그가 블랙처럼 해사하게 웃으며 협탁 위에 햄버거 보따리를 올려주었다. 비쩍 곯은 윌리엄이 혼자서 다 먹을 수 있는 양은 절대로 아닌 것 같지만 뭐, 자기 먹으라고 사다 준 거라니 당사자가 알아서 잘 처리하겠지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