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었다.
파스텔 톤에 파란 수국 꽃이 만발해 있는 꽃밭 한 가운데에 서 있는 꿈이었다.
바람이 불다 말다 갖은 변덕을 부렸다.
몽롱하다 해야 할까 정신이 없다 해야 할까. 시야 끄트머리에 보이는 흰 손과 맨발이 자신의 것이라는 걸 인식하기까지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바짝 깎은 발톱을 하염없이 내려다 보다, 저 익숙한 것이 자신의 발이라는 걸 한참 만에 깨닫고선 열 발가락을 고루 고루 꼬물딱거렸다. 그러자 문득, 새삼스럽게도, 여자는 그제서야 제 발 바로 앞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멋진 턱시도 차림의 젊은 왕자가 무릎을 꿇은 채 죄인마냥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하얀 정장에 하얀 구두, 하얀 넥타이를 한 그 남잔 머리마저 새하얀 순백색으로 갈색 피부가 무척이나 생기로운 실로 건강미 넘치는 왕자였다.
수국을 뭉갠 왕자의 무릎이 더러운 흙물로 진창 물들어 있다.
비단 무릎뿐만이 아니다. 반들 반들 윤이 나는 구두 코를 비롯하여 빳빳하던 바짓단, 단정한 소매 끝…… 온 몸이 진흙탕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음에도 왕자는 숨을 쉬는 것 조차 잊고 미동도 없이 스러지듯 그렇게 앉아 있었다. 얼굴을 가리운 앞머리 탓에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그녀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덥고 건조한 날씨인데도 어찌 된 영문인지 왕자의 턱 밑에 있는 수국에만 동글 동글 한 물방울들이 한아름 맺혀있었다.
꼼지락거리던 발을 멈추었다.
한 걸음 뒤로 물러난 뒤, 그대로 쭈그려 앉으며 양 손으로 턱을 괴었다.
“ 여기서 뭐하세요? ”
질문하자, 그가 가슴을 들썩여 처음으로 날 숨을 내쉬었다.
“ ……기다려, 일어나기를. ”
“ 기다려…. 누굴요? 당신? ”
“ 아니. ”
매인 목과 괴로운 신음 소리.
왕자가 답했다.
“ 이제 그만 일어 나,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