名前:사카타 긴토키
추억이14페이지
좋은데-?
할일없이 삐딱하게 책상 앞에 앉아있던 내 눈 속으로. 문득, 눈에 띄게 넘어간 책상 위 달력이 들어온다.
그날 이후로 다 여섯 장쯤. 그쯤 넘어갔을까?
유난히 눈물이 많았던 속 여린 너와. 네 앞에 서면 감정표현이 서툴렀었던 나.
그런 우리가, 언제부터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설레고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린 연인이 되어있었지.
그래 맞아. 별 의미 없이 눈만 마주쳐도 설레고 좋았던 그 연애 초기 때. 벅찰듯한 감정에 젖어 행복했던 그때. 그때의 우린 몰랐어. 지속적이고 마냥 순수할 것 같던, 그 감정의 그늘 속에 가려졌던 우릴.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의 눈을 가렸던, 그 감정들이 구름처럼 서서히 걷혔을 때 써야. 서툰 내 표현과 또 그것으로 혼자 속 앓이를 해왔던 네 모습이 드러났었지만. 알면서도 외면한 나와. 그런 나를 더 이상 받아줄 수 없었던 너.
그래서 넌 그런 선택을 해버린 것인지도 몰라.
네가 이곳에 마지막으로 들렀던 그 날. 그날의 넌, 여느 때보다 말이 없었고. 손가락만 스쳐도 울어버릴 것같이 불안정한 모습이었지.
그런 널 보며, 아마 나도 어느 정도 짐작은 했을 거야. 네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를.
눈도 맞추지 않고 그저 가만히 창밖만 응시하고 있던 네가 고개를 돌렸을 때. 고개를 돌려 나와 눈을 맞췄을 때. 난 그제야 겁을 먹고 네 눈을 피하듯 시선을 돌렸는데. 내 두 귀속으로 뚜렷이 들려온 네 목소리만큼은. 피할 수 없더라고.
생각할 시간을 갖고 싶다는 지쳐있던 너의 목소리. 그동안은 아마 날 찾지 않을 거라던 뒤이어진 그 말과 자리에서 일어서는 너의 행동까지.
그런 익숙지 않은 너의 말과 행동에 모두 동요했으면서도. 난 또 아닌 척. 담담한듯한 목소리로 그러라고 해버렸고. 곧 너는 잘 있으라는 말과 함께 날 지나쳐 가버렸다.
사실. 그렇게 멀어져 가버리는 널, 어서 붙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순간적으로 용기를 얻었지만. 누가 내 몸에 무거운 무언갈 짊어놓은 마냥 몸이 움직여지지 않더라.
그래서 한심하게도 난 너를 붙잡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네가 언제나처럼 금방 다시 돌아올 거라 생각했을 지도 몰라. 며칠 후면 다시 볼 수 있을 거라, 네 목소리도 곧 다시 들을 수 있을 거라, 그렇게 생각했나 봐, 난.
그런 바보 같고 이기적인 생각 때문인지. 아니면 다시 돌아 올 수 있을 지도 모를 그 미약한 희망이 존재하는 네 말 때문인지. 아직도 난 전혀 실감이 나질 않아. 우리가 헤어졌다는 게.
몇 달 동안 날 찾지도 연락도 없는 걸 보면 대답은 뻔한데 말이야.
지금 넌 무엇을 하고 있을까? 내 생각은 하긴 할까?
이렇게 하루에도 혼자, 수 없는 물음을 만들어 그리는 게 일상이 되어버렸구나. 내가 먼저 널 찾을 생각은 않고.
피식. 한심스럽다는 듯 웃어버리며 다시 달력을 멍하니 들여다보는 나.
그러던 중 요란스레 집안으로 들어서는 꼬맹이 두 녀석 덕에 정신이 번쩍 든다.
신파치"긴상, 긴상!!!"
긴토키"조용히 못 다니냐, 꼬맹녀석들?"
카구라"그게 문제가 아니다, 해!"
그 요란에 무슨 일이냐 싶어하는 내게, 마트 광고지를 확 갖다 들이니는 신파치 녀석.
장이라면 얼마 전에 보고 왔는데. 웬 거지?
긴토키"이게 뭐 어쨌……."
신파치"오늘이 마지막 세일 이라고요! 간장이랑 토마토 케첩! 이럴 때 미리 사둬야지 가계에 잔고가 언제 거덜 날지 모르는 게 일상이잖아요?!"
카구라"그래 맞다, 해! 의뢰가 언제 들어올지 모르고, 긴짱이 또 언제 파칭코에 들락거릴지 모르니까!"
의욕 넘치는 표정인 녀석들에게 난 언제나처럼 귀찮다는 식으로 그렇게 얼버무려버린다.
긴토키"겨우 그 두 개 사오는데 나까지 나설 필요 있냐? 둘이서 갔다 와, 둘이-."
그러고는 무신경하게 고개까지 돌려 버렸지만.
신파치"한곳에서 파는가면 그러겠는데요. 사실 이것들 둘 다 반대편에 위치한 마트에서 파는 것들이라. 그리고 또, 그만 긴상이 밖에 나갔으면 하는 마음에……."
처음과 달리 힘이 사라진 신파치의 목소리에 슬쩍 고개를 든다.
그리고 속으로 푹 내쉬는 한숨.
카구라도 그렇고 신파치도 그렇고. 정말 녀석들에겐 어울리지 않는 표정이다. 풀죽은 듯 시무룩한….
직접 언급은 하고 있지는 않지만. 대충 눈치챘겠지. 그 녀석과 헤어진 후로 외출하는 횟수가 줄어든걸….
녀석들 생각해서라도 그만 털어내고 바깥 공기를 마셔보고도 싶지만.
혹시라도. 혹시라도 내가 이곳을 비운 사이. 녀석이 찾아오지 않을까?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그런 희망 고문에 난 쉽사리 그럴 수도 없다.
그런데 녀석들의 표정이 오늘따라 더욱 시무룩해 보이는 게….
긴토키"난 뭘 사오면 되는 건데?"
전하고 싶은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