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가지로 운수가 나쁜 날이었다.
집어들고 나온 우산은 하필이면 고장난 우산이었고
발걸음을 재게 놀리다 하필이면 하수도에 한쪽 신발을 빠뜨렸다.
날씨 맑은 날에는 그렇게 많은 것 같던 지붕 달린 가게가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고
겨우 찾은 처마도 몸을 편하게 가누기에는 여간 비좁은 게 아니었다.
그리고 하필이면 이런 날, 지금 내 곁에는 아무도 없다.
쏴아.
비는 그칠 줄을 모르고 계속해서 내렸다.
하염없이 쏟아지는 빗줄기들을 보고있자니 괜히 울화가 치밀었다.
바보.
멍청이.
눈치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놈.
사람 마음같은 건 하나도 모르지.
많은 걸 바랬던 게 아니였는데. 비록 예전처럼 살가운 사이와는 거리가 멀었다지만.
다투고 싸워도 이렇게 비라도 오는 날이면 우산을 들고 서로에게 달려갈 수 있는, 그런 작은 것을 바랬는데. 나는.
그런데 너는.
고작 내게 남긴다는 마지막 말이 그런 거였어?
인상을 찌푸렸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내가 겨우 그정도로밖에 비춰지지않았나, 무척이나 억울했고, 서운하기도 했다.
열 펄펄 끓다 일어났더니 그런 편지쪼가리나 있고!
내가 신스케랑 있으면 더 편해질 거라고 생각했어?
신스케랑 있으면 더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던거야?
속으로 몇 번이고 외쳐물었다.
아무리 내가 짝사랑했던 남자라지만 착각도 정도껏 좀 하라고 해주고 싶었다. 신스케를 좋아했던 것도 벌써 언젯적 일인데. 멍충이.
"..긴토키 이 바보멍청아...."
코끝이 찡해졌다. 화가 나는 것도 잠시, 그동안 꾹꾹 눌러담았던 설움이 북받쳐올라와 꼭 다물었던 입술 틈새를 비집고 울음이 새어나왔다.
"아무리 서먹해졌었다 해도...아무리 서로 지쳐있었다 해도...아무리 예전과는 많이 달라져있었다 해도..."
나는. 나는.
"..무관심하고...무신경해보이는 와중에도...서로 걱정하는 건 예전이랑 다를 바가 없었는데..."
일주일 전 오늘같은 장대비를 맞으면서 몇달 치 울을 건 다 울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였나 보다.
이렇듯 지금 또 울고있으니까. 굵은 눈물을 뚝뚝 흘려가면서.
"힘들고 지겨워도 그대로 놓아버릴 수는 없어서...그래서..."
사람 많은 곳에서 울음이 터지는 것 못지않게,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쓸쓸히 우는 것 또한 만만치 않게 고달픈 일이다, 라고 나는 생각했다.
"나도 모르게 말이 엇나갈 때면 뒤돌아서서 미친듯이 후회하고...그랬는데..."
긴토키도 내게 가시 돋친 말을 뱉고 나서는 으레 그럴 거라고 생각했는데.
"서로 갈등이 커진 것도...되돌리기엔 너무 멀어진 것도 알았었어."
흘러내린 눈물방울이 앞에 고인 물웅덩이에 툭 투둑 떨어졌다.
"예전같은 시간을 보내지는 못했지만.."
그래. 지속할수록 힘들어지는 관계란 걸 알고있으면서도 나는 그냥.
"아무리 어긋나도 도저히 내 손으로 끊어낼 수 없는 사람이라서..."
얼굴을 감싸가리고 남은 울음을 모두 토해냈다.
지금 내 모습이 스스로도 너무나 처량하게 느껴졌다.
끝없는 빗소리가 구슬펐다.
있지. 긴토키.
나는 지금도.
"고개를 들었을 때 네가 내 앞에 있었으면 좋겠어.."
어째서 나는 이미 자리에서 일어서고 있는 것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