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스케"떠나기 전 고맙단 인사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뭐?"
신스케의 말에 여잔 놀란 토끼 눈이 되었다. 자신의 몸 상태가 어느 정도 회복되면 그에게 찾아가 이것저것 물어볼 것도 하고 싶던 말도 많았는데, 당장 떠나버린다니…. 그것도 그럴 것이 그는 아직 회복이 덜 된 몸이 아닌가.
"떠나다니? 그 몸으론 아직 무리야."
신스케"전쟁 중 베이고 찢기는 건 당연지사야. 죽지 않은 게 다행이지. 이렇게 가만히 있을 시간도 없어. 안 그러면 그분이…."
그가 저리도 절박한 이유는 여자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양이지사로 활동하게 된 신스케를 포함한 나머지 둘과 이곳 의무병으로 지원하게 된 자신까지 모두 그분을 구하기 위한 일들이었으니까. 그래도 여잔 무슨 이유를 대서라도 신스케를 붙잡고 싶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분노 서린 그의 마지막 눈빛에 쉽사리 입이 열리지 않았다.
신스케"어쨌든 네게 큰 호의를 입었다. 귀병대 대장이란 직책이 있어 함부로 죽을 수도 없는 몸이니까."
지금 당장에라도 떠날 것 같은 신스케의 말에 여자가 굳어진 표정을 감추려 고개를 내렸다. 그리고 몇 번의 망설임 끝에 여잔 입을 열었다.
"고마워 할 필요 없어. 그때의 너도 날 도와줬으니까."
신스케"?"
"학당 시절 긴토키와 산에 갔다가 다리 다쳤을 때…. 그때 네가 날 부축해줬잖아."
신스케"그랬던가. 오래전 일이라 그런지 기억이 안 나는군."
"그렇겠지…. 하지만 난 생생히 기억나. 왜냐하면…."
십 년 동안 혼자 품은 채 꺼낼 수 없었던 말….
"난 널 좋아했으니까."
마치 다신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에 여잔 때아닌 때에 어렵게 숨겨왔던 말을 너무나도 쉽게 해버렸다.
아직 숙어진 고개로 그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알 순 없었지만 그렇다고 확인해볼 용기도 생기지 않아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웃음을 흘렸다.
"헤, 말이 없네…. 너무 신경 쓰지 마. 그냥…. 한 번쯤 네게 고백하고 싶었어가든. 그러니까…."
신스케"훗, 한 번쯤이라니. 두 번째 아닌가? 직접 듣는 건 처음이지만."
"어?"
이해가 안 가는 신스케의말에 여자가 숙여있던 고개를 들어 그와 마주 봤다. 그는 옅게 웃고 있었고 여잔 여전히 그 말 뜻을 알지 못했다.
"무슨 소리야? 두 번째라니?"
신스케"편지 말이야. 긴토키녀석을 통해 전해주지 않았나."
"편지라니? 물론 네게 주려고 쓴 적은 많았지만 전해준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그리고 긴토키가 전해줘?"
자신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는 여자의 표정에 그가 실소를 흘리며 말을 잇는다.
신스케"그럼 그게 그 녀석의 장난이었단 말인가. 물에 젖어 번져 있는 글 읽느라 꽤 고생했었는데 말이야."
물에 젖은 편지라는 말에 무언가 생각이 났는지 여자가 조금 놀란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그때…. 긴토키가…?"
희미하지만,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긴토키의 짓궂은 장난으로 냇가로 떠내가 버린 편지 사건. 당연히 신스케에게 전하지 못해 잊고 있었고, 또 그것을 긴토키가 전해줬을 거라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기에 여잔 잊고있었던 것이다.
"아니 잠깐! 그럼 신스케는 그때부터 내가 좋아하고 있다는걸 알고 있었다는 얘기잖아?"
그렇다는 듯한 신스케의 표정에 여자의 뺨이 점점 붉어졌고, 신스케는 그런 모습을 재밌다는 듯 쳐다봤다.
"그, 그런데 왜 숨기고 있었던 거야??"
신스케"난 숨긴 적 없어. 숨긴 쪽은 오히려 너지."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너무도 담담한 신스케의 어조에 여잔 딱히 받아칠 수 없었다. 그저 점점 달아오르는 두 뺨만 매만질 뿐.
달아오른 두 뺨을 식히느라 정신없는 여자에게 그가 다시 진지해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신스케"그래서 말인데."
"어어?"
신스케"전쟁이 끝나고 나면 널 데리러 올 생각이야…. 큭, 어차피 기다리는 건 네 마음이지만."
너무도 의외의 말을 들은 여잔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하얘졌다.
신스케"그러니 그때까진 다른 녀석한테 수혈해준답시고 쓰러지거나 하지 마. 네 덕에 살긴 했지만 내 입장에선 꽤 놀랐으니까."
자신에게 아무런 감정 없는 듯 대해주던 신스케라 기대 또한 한 적 없었고 그저 고백만 하고 싶었던 소박한 마음뿐이었기에 지금 상황이 여잔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별 대답 없이 당황한 듯 심각한 표정을 짓는 여자의 모습에 신스켄 나가려는 듯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신스케"대답은 그때 들어도 상관없다. 건강히 잘 있기나 해."
막 문고리를 돌리는 신스케의 모습에 여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벌써 떠나는 건 아니지?!"
여자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문밖으로 나선 신스케. 곧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고 '피식'하는 웃음을 흘린다.
신스케"엿들은 건가."
=두번째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방안엔 둘만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