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우산을 받쳐들고 골목 이곳저곳을 다니고있었다.
어딘가 상당히 다급한 발걸음으로. 나는 거의 본능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신파치에게서 그 말을 듣고 집을 나선 이후로, 내 눈은 너만을 찾았다.

그러다가 마침내 처마 밑에 쪼그려앉아있는 너를 발견했을 때, 나는 그자리에 멈춰설 수 밖에 없었다.

너는 울고있었다.
고개를 숙인 채, 중간중간 호흡이 끊길만큼 서럽게 우는 너였다.

그런 너에게 나는 섣불리 다가가지 못했다. 한심하게도.

그렇게 잠시 망설이다, 가급적 조용히 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는지, 너는 그 뒤로도 한참 동안이나 고개를 들지 않았고 나 역시 말 한마디 없이 그 자리를 지켰다.

그로부터 얼마 후 울음을 조금 그치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린 너는 나를 보고 그대로 모든 것을 멈추었다. 어쩌면 숨쉬는 것 조차도.
그렇게 또 다시 정적만이 흘렀다. 우리 둘 사이에 흐르고 있는 것은 오직 빗소리 뿐이었다.


"..언제부터 있었어?"


그리고 그 고요한 침묵을 깬 건 너였다.
조금은 갈라진 네 목소리에 내 목도 따끔거려왔다.


"...아까부터."


떨어져있을때는 서로에 대한 말을 아낌없이 쏟아낼 수 있음에도, 정작 이렇게 직접 대면하면 다시금 어색해지곤 한다.
권태기에 접어든 이후로 벗어날 수 없던 굴레와도 같았다. 우리 사이에 자리한 이런 침묵은.

그러나 이제는 얌전히 그 굴레 안에 묶여있을 수만은 없다.


"..네가. ..하는 얘기. 다 들었어."


내 말에 네가 시선을 내리깐다. 예전에는 나도 따라서 눈길을 돌리곤 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나는 곧은 시선으로 너를 보았다.
마주하지않는 눈은 결코 진심을 전할 수 없다. 이를 몸소 깨닫기까지는 정말이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가."


미숙했어.

입밖으로 내고 싶지만 생각만큼 쉽사리 나오지 않는 그 말. 싸운 뒤 꺼내는 미안하다는 말만큼이나 목에 걸린 듯 잘 뱉어지지않는 말.


"내가..많이 미숙했던 것 같다."


내 말에 네가 나와 눈을 맞췄다. 맞닿은 너의 두 눈은 예상 밖의 말이라는 듯 크게 떠져있다.


"힘들면."


서로가 힘들고 지치면.


"그만 끝을 내고 놓아주는게 너한테도, 나한테도 좋을 거라 생각했어."


말을 이어갈수록 내 생각이 짧았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느끼다시피, 어느정도는 식어있던 관계여서."


나는 이 말을 할 때 내 목소리가 떨리지 않기를 바랬다.


"그렇게 끝을 내고, 서로를 보내주면. 그다지 미련도 남지않고, 상처도 남지 않을 줄 알았어."


분명 가능한 또박또박하게 말할려고 하고 있었지만,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 내 목소리는 조금씩 갈라지기 시작했다.


"후회같은 것도 하지 않을 줄 알았어."


그런 날 보며 눈을 깜빡이는 너.


"그런데."


"....."


"..꼴사납겠지만."


"...긴..."


"......후회돼."


그렇게 너를 보내버린 게. 맥없이 놓아버린 게. 그렇게 바보같은 짓을 한 게 전부 다 후회 돼.
인정하기 싫었던 걸지도 몰라. 그런데 지금에서야 뼈저리게 깨달은 것 같아.
너를 놓은 걸 후회한다고.
네가 내 앞에 있었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