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란 여자를 뒤로한채 긴토키는 여자의 집을 박차고 나왔다. 달빛이 마치 술을 먹은냥 일렁거렸다. 꼭 자신의 심정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긴토키는 주위를
살폈다. 하지만 보이는 것이라곤 여자의 불이 켜지지않은 창문과 집앞의 가로등에서 날아다니는 나방 한마리 뿐이었다. 긴토키는 서서히 가로등 아래로 걸어갔다.

긴토키"그새 숨박꼭질 실력이 느셨습니까, 다카스기군?"

긴토키는 마치 허공에 대고 말하는 듯싶었지만 껌껌한 그 어둠속에서 소스라치도록 음산한 웃음소리가 늘었다.

신스케"딱히 숨은 적 없다. 네녀셕 눈이 나빠진거겠지."

이내 신스케는 곰방대의 연기를 내뿜으며 어두컴컴한 골목안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신스케를 바라보는 긴토키의 눈엔 가로등의 빛이 반사되고 있었다.

긴토키"..너, 분명날보고 (-)에게 키스를"
신스케"그렇다면 어쩔거지?"

긴토키의 말을 끊고 신스케가 물었다. 긴토카는 여유롭다는 듯 곰방대를 빨아대며 말하는 신스케에 태도에 미처 식히지않은 감정이 다시 활활 불타올랐다.

긴토키"뭘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거야,네녀석."
신스케"그럼 (-)를 울린것은 어떻게 설명할거지?"

신스케의 물음에 긴토키는 말문이 막혔다. 그렇겠지, 그녀라면 뒤에서 혼자 울고있었을게 뻔하다. 알면서도, 그 눈물을 닦아주지 못했다.
긴토키는 주먹을 꽉 쥐었다, 뼈가 으스러져 가루가 되버릴 정도로 꽉.

신스케"..못말하겠지, 네녀석은. 그러니까 내가 (-)를 데려가려고 한거다. "

신스케의 한마디 한마디가 긴토키의 심장을 푹푹 찔러넣었다. 반박할수가없다, 그렇다고 (-)를 울지않도록 하는 법도 이젠 모르겠다.

신스케"(-)가 내 키스를 피하지 않은 것도 이미 너를 포기해서 그런거 아니냐. "

퍽, 조용한 밤거리에서 그저 나방의 날갯짓소리만 들리던 이 거리에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신스케에 입가엔 신스케의 창백한 피부와 상반되는 새빨간 피가 고였다.
긴토키의 손은 떨림이 멈추지않았다. 그렇다고 주먹이 펴지지도 않았다. 마치 손가락 마디마디 마다 자석이 붙어있는듯 찰싹 달라붙어있었다.

긴토키"..닥쳐, 니가 뭘안다고 그렇게 잘난듯이 나불거리는거냐. "

이렇게 하면 (-)가 싫어할것을 알고있다, 분명 화내겠지. 분명 울겠지. 하지만 긴토키는 멈출수가 없었다. 신스케는 피식, 바람을 한번 빼듯 웃고는 그대로 긴토키의 얼굴에
주먹을 가격했다. 퍽, 다시한번 거리에서 둔탁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신스케"네놈은 옛날부터 무슨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네놈은 얼굴짝부터 머리까지 정말 웃긴놈이야."

스윽, 자신의 유카타의 소매로 입가를 닦았다. 쓰라림이 느껴졌지만 그녀의 눈물보단 쓰라리지 않으리라. 몇초간의 정적이 공기의 일부가 되었다. 신스케는 긴토키를 등져
돌아섰다. 품속에서 다시 곰방대를 꺼내 물었다. 긴토키는 입가에 고인 피가 말라가는 것이 느껴졌다. 쓰라림이 더욱 강해졌다. 입술도, 심장마저도 쓰라려져 갔다. 신스케가
곰방대의 연기를 내뿜었다. 가로등의 불빛에 인해 연기는 뿌옇게 선명히 보여졌다.

신스케"그래도 믿을 구석은 하나쯤은 있을줄알았는데 그건 내 착각인가보군. "

긴토키는 신스케의 뒷통수만을 노려볼뿐이었다. 신스케는 몇발짝씩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런 신스케의 행동에 움찔한 긴토키가 목검을 잡았으나 그것을 알아챈것인지
신스케가 말을 이어갔다.

신스케"언제까지고 네놈 뜻대로 될거라곤 생각하지마라, 긴토키."

그렇게 알수없는 말을 뱉고선 신스케는 가버렸다. 그 어둠속으로, 거리에 남은 거라곤 가로등 불빛아래 나방한마리와 긴토키뿐이었다. 마치 갈곳을 읽은 아이처럼 무작정 걷는
긴토키는 자연스레 (-)의 집으로 들어갔다. 이곳도 컴컴했다. 이 방안은 가로등마저 없었다. 현관앞에서 쭈그려앉아 색색, 숨소리를 내며 자고 있는 (-)만이 존재했다.
(-)의 옆에 앉아 긴토키는 금방이라도 깨져버릴것 같은 유리를 쓰다듬듯 (-)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가 고개를 틀었다. 놀란 긴토키는 손을 뒤로 뺐다. (-)의 얼굴을 보니 울었
는지 눈가가 빨개져있었다. 긴토키는 손을 가져다가 멈칫 손을 잠시 일시정지하듯 가져다대지 못하다 이내 (-)의 눈가에 손가락으로 살살 문질러주었다.

긴토키"..미안하다, (-). "

긴토키는 돌아갈 심정으로, 이젠 (-)를 볼수없을지도 모른다는 심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이내 행동을 멈추었다. 아니 멈출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손목이 무엇에
묶인듯 움직일수없었다. 그저 자는줄만 알았던 (-)가 가려는 긴토키를 멈춰세웠다.

"...가지마"

울음이 섞인듯 불안정한 그녀의 목소리에 긴토키는 아무말도 없이 안쓰럽게 그녀를 내려다볼뿐이었다. 어두워서 잘보이진 않았지만 그녀의 어깨가 약간씩 들썩이는 게 보였다.
또 그녀를 울렸다. 어떻게 위로해야했던거였지, 기억나지않는다. 기억나지 않는데 몸이 저절로 그녀를 껴안았다. 잃어버렸던 것을 다시 되찾은 사람처럼 그렇게 껴안았다.

긴토키"이젠, 네가 편한데로 해. 난 상관없어."
"..응."

그녀의 훌쩍거림이 점점 작아졌다. 거리는 처음처럼 조용했다. 그저 가로등 불빛아래에 나방의 날갯소리만 들릴뿐이었다. 타닥타닥, 하는 날갯짓소리가.
無題 - 천혜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