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xx년 x월 xx일 날씨 맑음(사실은 구름 뿐이지만).

오늘도 그 이와 싸웠다.
텃밭에 물을 주다가, 자라지도 않을 풀에 물은 주어서 뭐 하냐며 그가 딴지를 걸었다.
그러더니, 며칠간 들어오지 않을 거라며 또다시 집을 나가려 했다.
나는 더이상 참지 못하고 그에게 화를 냈고, 그것이 싸움의 시작이었다.

일단 손에 들고 있던 물뿌리개를 이용해 그의 눈에 물을 뿌려 시야를 가린 뒤
급소를 가격해 상체를 숙이게 만든 다음 등허리 위에 팔꿈치를 강하게 내려찍고
그와 동시에 180도의 궤적을 그리며 그의 얼굴에 어퍼컷을 날렸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서 허리에 차고 있던 우산을 휘둘러
고통의 비명을 지르는 그의 입을 단단히 막아주었다.
끈질긴 그 인간은 결국 보란듯이 집을 걸어나가버렸지만 말이다.
역시 다리를 부숴트리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 걸까...

나는 그저 곁에 있어주기를 바랄 뿐인데, 어쩜 이렇게 내 맘을 몰라주는 걸까.
이럴거면 꽃다운 나이의 여자를 왜 아줌마로 만든 건지...
그이가 정말 원망스럽다.

하지만 뱃속의 아이가 생기고서부터는 그이가 없어도 그다지 외롭지 않다.
누구 아이 아니랄까봐 가끔씩 발길질을 할 때면 힘이 엄청나다.
가능하다면 힘 뿐만 아니라 얼굴도 아버지쪽을 닮았으면 좋겠는데...
만약 그렇게 되면 굉장히 사랑스럽겠지.
언제쯤이면 아이의 얼굴을 보게 될 날이 올까.

참, 오늘 그 이가 떠나기 전에 아이의 이름을 지어주었다.
아이의 이름은 '카무이(神威)'다.
나는 이 아이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언제나 곁에서 지켜주는 의젓하고 상냥한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


18xx년 6월 1일 날씨 맑음(사실은 비가 내렸지만).

힘이 들지만, 오늘만큼은 꼭 오늘 있었던 일을 일기장에 쓰고 싶었다.
오늘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카무이가 세상에 태어난 날이다.

오전부터 진통이 시작 됐는데, 그 이가 없어서 처음에는 굉장히 무서웠다.
아이가 나와도 받아줄 사람도 없고, 혹시라도 내가 기절을 해버리면 아이의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자, 거짓말 처럼 그 이가 나타났다.
언제나 집을 나가버리며 속을 썪이곤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가 곁에 있어주어서 그에게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그렇잖아도 무엇을 붙잡고 고통을 참아내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마침 그의 머리카락이 눈에 딱 들어왔다.
아이를 낳으면서 너무 세게 잡아당겼던 탓인지, 나중에 깨달았을 때에는 내 손에 그의 머리카락이 한 웅큼씩 쥐어져 있었다.
그는 이러다 대머리가 되겠다며 우는 소리를 했지만, 아이에게 정신이 팔려 있던 나는 전부 무시해버렸다.
내가 바라던 대로, 아이는 그 이를 많이 닮아 있었고, 특히 눈매가 그 이와 똑같았다.
그 아이가 나를 보며 방긋 웃는 순간, 어찌나 기쁘던지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웬 일인지 그 순간만큼은 그 이도 다정한 목소리로 내게 사랑한다고 말해주었다.
그래서 나도 같은 대답을 돌려주었다. 물론, 시선은 그 이가 아닌 아이를 향하고 있었지만...

이 일기장을 빌어서, 다시 한 번 말하고 싶다.

사랑한다, 카무이.

18xx년 xx월 xx일 날씨 맑음(사실은 천둥이 쳤지만).

오늘은 굉장히 기쁜 일이 있었다.
내 텃밭에 드디어 첫 싹이 튼 것이다!

그 이는 자라날 리 없다고 우겼지만, 나는 언젠가 이렇게 될 날이 올 거라 믿고 있었다.
분명 멋진 식물로 자라나겠지.


18xx년 xx월 xx일 날씨 맑음(사실은 우박이 떨어졌지만).

카무이가 많이 아프다.
새벽부터 이마에서 열이 느껴지기 시작하더니 아침에는 온 몸이 뜨거워졌다.
황급히 약상에 달려가 약을 사다 먹여보았지만, 그다지 효험이 없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을 하다가 마침 텃밭에 심었던 약초가 떠올랐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 약초를 달여서 카무이에게 먹였더니, 기적처럼 열이 내렸다.
역시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물을 주길 정말 잘 한 것 같다.
이제 그 풀은 다시 자라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카무이의 병이 나았으니 후회는 없다.
언제 또 이런 일이 생길지 몰라서 산 중턱에 씨를 잔뜩 뿌리고 오긴 했지만...
또다시 싹이 튼다면, 그것은 정말 기적이라 할 수 있겠지.


("................")

(얌전히 카무이의 품에 안겨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띄운 채 두 눈을 감았다.)
(그저 그의 목소리를 통해 일기장의 내용을 전해듣는 것만으로도, 당시 그의 어머니께서 어떤 기분을 느끼셨는지,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등이 너무나도 잘 느껴지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마지막에 들었던 약초 이야기는 나의 마음을 강하게 움직였다.)
(그녀가 말한 '기적'이, 결국엔 일어난 것이니 말이다.)

(어느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그의 어머니는 굉장히 강한 분이셨다.)
(그리고, 카무이를 매우 사랑하고 계셨다.)

(그 일기장은, 그것을 알게 해주는 소중한 물건이었다.)

(더이상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그런 곳에서 썪어가도록 내버려두지 않길 정말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삼스럽지만 자신의 생일 날 이런 이야기를 알게 된 카무이의 심정은 과연 어떨까.)

(문득 카무이의 표정이 궁굼해져서, 나는 고개를 돌려 그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

(무언가 회상에 잠긴 듯, 그의 길다란 속눈썹이 차분히 가라앉아 있었다.)

("카무이, 무슨 생각해?")
카무이의 생일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