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날 이런저런 생각으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나는 평소보다 늦은 시간에 일어났다.)
(피곤했지만, 애써 일어나 세안을 하고, 옷을 갈아 입은 후 갑판으로 나갔다.)
(그리고, 마침 누군가와 함께 바람을 쐬고 있는 카무이를 발견했다.)
(".........")
(새하얀 백발을 아름답게 휘날리며 이쪽을 바라보는 여자아이.)
(카무이의 옆에 서서 우산으로 햇빛을 가리고 있는 그녀는, 카무이와 같은 야토족인 듯 했다.)
(나는 멍하니 두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카무이가 함선 안에서 나 외에 다른 여자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 있는 모습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카무이"...일어났어?"
(평소대로라면 이렇게 늦은 시간이 되기 전에 그가 나를 깨우러 왔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그 이유를 알게 되니, 어쩐지 매우 가슴이 불안해졌다.)
???"안녕하세요. 전 카무이의 친구 카요라고 해요."
(그 순간, 내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내게 인사를 건네는 여자의 목소리에, 되는대로 대답해버렸다.)
("안녕하세요...")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그저 그녀가 카무이의 친구라는 것.)
(내가 불안해해야 할 이유는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나는 굉장히 불안하고, 슬프고, 두려웠다.)
(나를 바라보는 여자의 눈동자가 너무나도 맑고, 아름다워서...)
(마치 꿈속의 여인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영원히 기억속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그런 눈동자였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홀로 침대 위에 누워 온종일 그 생각에 잠들지 못했다.)
(나 홀로 숨 쉬는 넓은 방 안)
(그는 내 곁에 없었다.)
("............")
(일이 워낙에 바쁜 날이면, 그 없이 홀로 잠들 때가 종종 있곤 하다. 하지만...)
(오늘은 일때문이 아니다.)
(그녀때문이다.)
(나는 빠른 속도로 뛰어대는 심장의 박동을 느끼며 두 눈을 꼭 감았다.)
(이건 절대절명의 위기라고, 내 직감이 말해주고 있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어쩐지 알 수가 있었다.)
(그녀는 카무이에게 있어서 평범한 친구가 아니다.)
(분명, 특별한 존재일 것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몇 시간이 흘렀다.)
(겨우 잠이 들었지만 차가운 바람이 어깨 위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느껴질만큼)
(나는 외롭고 쓸쓸했다.)
("............")
덜컥 - .
(그때, 문득 방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누군가 이쪽으로 걸어오는 소리가 들려온다.)
(평소대로라면 당연히 카무이라는 생각이 들었을텐데)
(어쩐지 굉장히 긴장되어 순식간에 졸음이 날아가버렸다.)
바스락 - .
(이윽고 걸음소리가 가까운곳에서 멈추고, 누군가 침대 위로 올라와 몸을 눕히는 것이 느껴진다.)
("...!")
(나는 순간 움찔, 하며 그대로 일어나 달아날 뻔했다.)
(도중에 하얀 손과 붉은 머리칼을 보고서 카무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면 말이다.)
(".........")
(나는 아무 말 없이 그에게 등을 지고 누운 채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왜 이제서야 왔느냐고 물어봐야할지, 아니면 그냥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할지, 쉽게 판단이 내려지지가 않았다.)
(이제와서야 깨달은 것이지만, 인간은 정말 연약한 생물이다.)
(너무나도 쉽게 '의심'이라는 그늘에 잠식 되어버린 나 자신만 보아도 그렇다.)
(지금의 나는 질투와 분노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걸 그도 알고 있을까...)
카무이".........."
(살며시 팔을 뻗어 내 몸을 안아오는 그에게)
(나는 차갑고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손 대지마. 저리가.")
(이윽고 그의 손이 주춤, 하고 허공에서 멈춘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대로 눈을 감아버렸다.)
카무이"화났어...?"
("..........")
카무이"저기... 잠깐 나좀 봐..."
("손대지 말라고 했잖아...!")
(되는대로 쏘아붙인 후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버린 탓에, 그의 표정을 읽을 수 없었지만)
(어쩐지 그가 굉장히 당황하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나는 애써 그런 그를 무시했다.)
카무이".........내 친구때문에 그래?"
(아무래도 지금 같은 상황에서 의심해볼 수 있는 것은 그것 뿐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는 쉽게 눈치채주었지만...)
(어째선지 내 마음은 점점 더 비뚤어져만 갔다.)
(".........")
카무이"오해하지마. 그냥 친구니까..."
(그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듣기 싫었다.)
(모든것이 변명처럼 들리고, 왜곡되어 들렸다.)
(그래서 나는 아예 귀를 막아버렸다.)
카무이"일전에 내 고향에 대해서 얘기했던 적 있지? 내가 거기에 살았을 때 사귀던 친구인데..."
("............")
카무이"저기..."
(내게 아무런 반응이 없자, 그가 손을 뻗어 내 어깨위에 살며시 올려놓는다.)
(나는 그 손을 냉정하게 뿌리쳐버렸다.)
카무이"역시 화났구나... 사실은 말이야..."
(그 후, 그의 목소리는 어딘가 불안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카무이"네가 괜한 오해할까봐 얘기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
(그만)
(제발 그만...)
(아무것도 듣고싶지 않다.)
카무이"그 애는... 네가 나를 떠나고 내 곁에 없었을 때..."
("그만...!!!")
카무이"......"
(그 순간, 조용했던 방 안에 내 날카로운 외침만이 커다랗게 울려퍼졌다.)
(그 이후, 그는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이쪽을 향해 누워서, 내 곁을 지킬 뿐이었다.)
(다음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