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지구를 보면 내 어렸을 적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곳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고고한 전통식 건물 사이로 높이 솟은 빌딩들이 천인들의 권력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향기로운 바람이 불던 들판이 양이전쟁 피해자들의 공동묘지가 되어버린 지금, 더이상 자연은 즐겁게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지금은 차가운 흙속에 묻힌 이들의 증오와 원망의 소리만이 울려퍼지고 있다.)

(그것은 비극이라는 이름의 얼룩.)

(인간이라면 죽은 자에게도 살아남은 자에게도 피할 수 없는 운명.)

(결코 져버리지 않을 마음, 연인을 향한 강한 애정조차도 그 운명과는 빗겨 갈 수 없다.)

(지금의 내 모습을 보면 알 수 있 듯이...)

("지구가 이렇게 된 건 다 너희들 때문이야.")

카무이"........."

아부토"........."

(해질녘의 어두운 조명이 비치는 황량한 방 안, 아무런 말 없이 날 바라보는 굳은 표정의 카무이와 그의 눈치를 보는 아부토.)
(나와 그들 사이에 한동안의 정적이 맴돌았다.)

(".........")

(과연 자신들이 지구에 저질렀던 일을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
(그들에게 있어서 지구는 지금껏 자신들이 부수어온 수많은 것들 중의 하나일 뿐.)
(어쩌면 이미 옛날에 모두 잊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인간들의 아픔도, 눈물도, 모두 다.)

카무이"무슨 대답을 원해?"

(".........")

(나는 입술을 꼭 닫은 채 냉정하게 그를 외면했다.)

카무이"말해 봐. 무슨 대답을 원하는지... 여기서 무릎이라도 꿇을까?"

아부토"...어, 어이."

(".........")

카무이"그당시 인간은 어느 천인에게 공격당한다 해도 무너져내렸을만큼 연약했어. 수 많은 천인들이 지구를 차지하기 위해 몰려들었지. 우리들은 천혜의 땅인 지구가 필요했고, 그것을 얻을만큼의 힘을 가지고 있었어. 인간들에게는 방어할 능력이 없었고, 그런 이유로 당했을 뿐이야."

("으읏...")

(그런 이유로 수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그들의 자리를 빼앗다니...)
(결국 강한 자는 언제나 당당하다, 이건가...)

(문득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새어나왔다.)

카무이"울긴 왜 울어?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거 아녔어?"

(".........")

카무이"울지 말고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다 해. 내가 미우면 날 때리고 욕해. 네 마음이 편안해질 때까지, 얼마든지. 그때 내가 너에게 빼앗았던 것들을 다시 돌려줄 수는 없지만 너에겐 날 비난할 권리가 있고, 내게는 변명의 여지가 없어. 약하다고 해서 눈물만 흘려선 안 돼. 움츠러들지 말고 당당하게 나를 욕해. 강하다고 해서 언제나 옳은 건 아니야. 나쁜짓을 했다면 그만큼 비난을 받는 건 당연한 거야."

(".........")

카무이"괜찮아... 말해도 돼, 내가 나쁘다고. 자신이 100% 옳은데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는 건 바보 같은 거야. 네가 내게 미안해할 이유는 전혀 없어."

("그치만...")

(이슬처럼 맺힌 눈물이 어느덫 바닥 위로 뚝, 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반면, 그는 애써 웃는 얼굴을 잃지 않으려 했다.)

카무이"너에게 원망 받는 걸 참아내는 것, 그걸로 네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안해지는 거라면 그것도 내겐 널 위한 하나의 방식이야. 적어도 나한테는 그런 인내가 필수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부디 참지 마. 나한테 다 쏟아부어. 내가 다 받아줄 테니까..."
다 너희들 때문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