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타오르듯 뜨거웠던 열기가 점차 식어가고, 어느덫 서늘한 기운이 온 몸을 감싸왔다.)
(문득 한 쪽 팔에 닿아오는 그의 손길.)
(흐트러진 시트 위에 가만히 누운 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던 나는 움찔, 하고 몸을 움츠렸다.)
(생각치도 못했던 심한 짓을 당해버린 탓일까, 그의 손이 닿는 것만으로도 순식간에 커다란 공포가 엄습해왔다.)
카무이"..............."
(이윽고 카무이의 표정이 희미하게 일그러졌다.)
(그는 자신의 손에 들고 있던 따뜻한 물에 적신 부드러운 타올로 내 몸을 조심스레 닦기 시작했다.)
(이제는 너무나도 낯설어져버린 그의 상냥한 손길이었기에, 오히려 겁을 먹은 나는 두 눈을 질끈 감고서 현실을 외면했다.)
(별로 개의치 않는 듯, 그는 계속해서 더러워진 내 몸을 정성스레 닦았다.)
(그리고 그 어떠한 말도 꺼내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에 내가 눈을 떴을 땐...)
(그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은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카무이"................"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평소와 마찬가지로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띄는 그였다.)
카무이"저기... 너 말야, 앞으로도 계속 여기서 생활하는 거지?
이제는 갈 수 없게 되어 버린 거나 다름 없지만... 아무튼 필요한 게 있으면 뭐든 말 해. 알았지?"
("...........")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너무나도 다정하게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에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카무이"이 참에 방을 좀 더 큰 곳으로 옮기는 거 어때? 여기는 내 방이랑 멀어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혹시라도 너에게 위험한 일이 생기면 내가 바로 알아차릴 수 있도록..."
("싫어.")
카무이"어째서?"
("너한테 감시 받는 생활따윈 하고 싶지 않아...")
(얼핏 들으면 날 보호하기 위해서인 것 같지만, 사실 그 속에 숨겨진 진짜 의미는 따로 있다.)
(그정도는 굳이 숨기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
(늘 그렇듯, 내 의사따위는 그에게 있어서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화가 난다.)
카무이"...나쁜 뜻은 없으니까 그렇게 화 내지 말고 다시 한 번 잘 생각해 봐. 난 지금 엄연히 너를 보호하는 입장이니까 너에게라면 무엇이든 다 제공해줄게. 물론 필요한지, 필요치 않은지와는 관계 없이 무조건적으로... 그 때문에 오히려 네가 힘이 들 때도 있겠지만 말야."
(".........")
카무이"이제 너도 알겠지? 아무리 거부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는 걸..."
(그가 짓는 웃음은, 그저 필요에 의해서만 짓는 가짜다.)
(나는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너무나도 현실적인 그 상냥함에 매번 희미하게나마 달콤한 기분을 느낀다.)
(그런 속물 같은 나 자신이 매우 경멸스럽다.)
(수치스러움에 이대로 자신의 의식을 잠재우고 싶다.)
카무이"곁에 있어줘... 내가 너에게 아픔을 주게 하지 말아줘......"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는, 그저 마음의 문을 굳게 닫은 채 두 귀를 막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