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있어도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메스꺼웠고, 스스로 일어설 힘조차 없었다.)
(너무 오랫동안 방 안에만 갇혀 지냈던 탓에 여러가지로 건강이 악화 되어 버린 듯 했다.)

(어느 순간 더는 방관하기 어려울 정도로 몸이 쇠퇴해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는 수 없지...")

(그래서 결국 문 밖을 나서서 바깥을 조금 걷기로 했다.)

천인1"저기 봐, 인간이다."

(어느정도 시간이 흐른 후.)
(문득 어딘가로부터 천인들의 대화소리가 들려왔다.)

천인2"아아... 듣기로는 저 인간이 제독의 애인이라던데?"

천인1"설마 - . 저건 그냥 툭, 건드리면 쓰러질 것 같은데 - ?"

천인2"쉿, 저래 뵈도 지금 제독이 푹 빠져 있어서 잘못 건드렸다간 목이 날아간다고."

(마치 아무것도 듣지 못한 것처럼)
(나는 애써 그들을 외면하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하지만 그러한 행동이 무색하게도, 내가 발을 딛는 곳마다 보이는 것이라곤 온통 그들과 같은 천인들 뿐이었다.)

천인3"인간이 왜 이런 곳에 있지? 저거, 죽여도 되는 건가?"

퍽 - !

천인3"아얏, 왜 때려?!"

천인4"얘기 못 들었냐! 저 분은 제독의 애인이시잖아...!"

천인3"엥 - ?! 그게 정말이야? 제독께서 인간하고?! 그 제독께서?!"

천인4"그래, 그래. 그러니 입에 담지도 말고 쳐다보지도 말라고!"

(언제나 그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척, 들리지 않는 척 할 뿐...)
(이런 천인들의 소굴에서, 애당초 고요한 평화따위는 바라지도 않았으니까.)

터벅 터벅 - .

천인5"저 인간이 제독의 애인이래."

천인6"엥? 이상하네. 확실히 인간이라고는 들었지만 내가 전에 봤을 땐 저 여자가 아니었는데?"

천인5"그게 무슨 소리야?"

천인6"저 여자가 아니었다고. 내가 봤던 건 금발이었어. 머리를 한쪽으로 이상하게 묶은 금발 여자. 그때 분명 제독이랑 같이 있었는데."

천인5"아아, 그 여자는..."

터벅 터벅 - .

천인7"최근 들어 제독 말이야, 그 여자를 곁에 두고 계신가 봐. 상당히 마음에 드셨나 보던데."

천인8"그러게... 정말 의외라니까. 딱 봤을 때 제독의 취향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었는데..."

천인7"아이고, 애당초 취향 같은 게 있기는 했냐? 제독은 지구의 싸움꾼들 말고는 딱히 인간에게 관심이 없으셨잖아. 아니, 여자 자체에 흥미가 없었지. 그런데 이상하게 그 여자에게만은 제법 집착하시더라구."

천인8"뭐가 어쨌든 아쉽네... 그 여자, 기가 좀 세긴 해도 제법 맘에 들었었는데."

천인7"뭐, 까칠한 성격은 둘째 치고 얼굴만은 반반하니까 제독의 맘에 든다 해도 이상할 건 없지... 아랫것들은 그냥 포기하는 수 밖에."

천인8"그렇겠지? 하아..."

(나는 문득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어느새부턴가 발걸음을 멈춘 채 천인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

(묘한 충격이랄까, 생각치도 못했던 사실을 우연히 듣게 된 이후 다리가 돌처럼 굳어버렸다.)

(당황스런 마음에 서둘러 다시 발걸음을 옮겨보지만, 그만큼 내 사고도 빠르게 돌아가지는 않았다.)
(그저 멍하니 허공 한 가운데서 무언가를 찾고 있을 뿐이었다.)

("어째서.........")

(어째서 여자가 있는데도 내게 그런 말을...)
(자신이 책임지겠다는, 그런 무책임한 말을 내뱉은 걸까.)

(너무나도 슬프고 화가 난다.)
(하필이면 나와 같은 인간이라니...)

(나를 이렇게 망가뜨려놓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도무지 이해 할 수가 없다.)

(내게서 실패한 사랑을 다른 인간여자에게서 성취하기라도 하려는 걸까.)
(그런 거라면 정말...)

(그 자식은 최악이다.)
다섯 번째 이야기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