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타코"........."

(넓디 넓은 방 안에 정적이 맴돌고, 책을 넘기는 소리 외에는 아무 것도 들려오지 않는다.)
(제독과 같은 공간에 단 둘이 앉아서, 서로 아무런 대화도 주고 받지 않고 시간을 보낸지가 이제 한 시간 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뻘쭘하게 앉아 있는 나와는 달리, 제독녀석은 테이블 위에 두 다릴 쭉 뻗고 앉아서 책을 읽으며 여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마타코"저어..."

카무이"응?"

마타코"...아무것도 아녜요."

(사실 내가 하루사메에 도착했던 그 날 이후, 바로 어제까지 제독과는 아무런 접촉이 없었다.)
(바로 오늘 아침, 아주 우연찮은 일로 그와 마주쳐서 이런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 우연찮은 일이란, 정말 별 것 아니면서도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다.)

(오늘 아침, 나는 언제나와 같이 일주일에 한 번 있는 귀병대의 정기회의에 참석하려 했다.)
(이제 이곳에서 생활하게 되기는 했어도, 나는 어디까지나 귀병대의 간부이니 말이다.)

(그렇게 생각해 아무런 말도 없이 함선을 타고 하루사메를 빠져나가려던 도중, 우연히 막 기지로 귀환한 제독과 마주쳤다.)
(그리고 나를 본 제독의 반응은...)

카무이"어딜 가려고. 죽여버린다?"

(그것 뿐이었지만)
(그 짧은 한 마디가 내게 아주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그 이후, 뒷덜미를 붙잡혀 자신의 방까지 끌려온 것이 지금까지의 상황설명이다.)

마타코"........."

(아까부터 쭉 책만 들여다 보고 있으니 날 감시하려고 있는 건 아닌 듯 하고...)

(도대체가, 책을 읽으려면 자신의 방에 가서 읽으면 될 것을 왜 굳이 남의 방에 들어앉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것도 여자의 방에 말이다. 남자로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매너도 모르는 건지...)

(아까부터 자리에서 일어나 무언가를 하고 싶어도, 그의 눈치가 보여서 도무지 그럴 수가 없다.)

카무이"...재미 없어."

탁 - .

(그 때, 갑자기 그가 책을 덮어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카무이"...있지, 지구에는 이런 시시한 책 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는 지루한 듯 팔짱을 끼며 눈썹을 찌푸렸다.)
(혹시 나한테 묻는 건가...)

마타코"뭘 읽으셨는데요...?"

(나는 쭈뼛쭈뼛 어깨를 펴고는 어색한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카무이"로맨스소설."

마타코"에...? 로맨스...?"

(전혀 예상치 못 한 그의 대답에, 순간 웃음보가 터질 뻔했다.)

(그도 그럴 것이 로맨스라니, 해적함선의 제독... 총사령관인 사람이 로맨스를 읽는다니...)

마타코"큭큭..."

(더군다나 책 제목이 '버릴 수 없는 우리들의 슬픈 사랑'이라니...)
(도무지 웃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다.)

카무이"어이... 난 그냥 지구에서 제일 많이 팔리는 거라고 하길래 산 것 뿐이야."

(내 손 틈으로 새어나간 작은 웃음소리를 들었는지, 문득 그가 까칠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타코"네... 그러셨군요..."

(나는 애써 얼굴에서 웃음기를 지우고는 진지한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마타코"...무슨 내용인데요?"

카무이"서로 사랑하는 남녀가 이루어질 수 없는 비극적인 운명을 가지고 태어나 결국엔 헤어진다는 얘기."

마타코"아... 슬픈 결말이네요?"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의 모습에서 슬퍼하는 분위기 같은 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의 말 그대로, 지금 그는 시시한 신문이나 잡지 따위를 읽고 난 후의 표정을 짓고 있다.)

카무이"도대체가... 사랑하지만 - 사랑하니까 - 사랑해서 - 널 보내는 거야'라니...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이야???"

마타코"푸훗...!"

(문득 답답한 듯 고개를 갸우뚱 거리는 그의 모습을 보고는 피식, 웃어버렸다.)

카무이"도무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니까. 넌 알겠어?"

(나는 두어 번 헛기침을 하고는 웃음을 가라앉힌 뒤 그의 물음에 대답했다.)

마타코"예... 저는 알 것 같은데요."

(그러자, 문득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터벅터벅 - .

(그리고는 성큼성큼 내 앞으로 걸어와 근처의 테이블 위에 걸터앉은 뒤, 내 말에 귀를 귀울이 듯 이쪽을 향해 상체를 숙였다.)
(그가 조금만 더 다가오면 서로의 얼굴만이 시야를 가득 채울 것만 같았다.)

마타코"........."

(아래를 내려다보는 섬뜩한 푸른색 눈동자에 순간 움찔, 해버렸지만...)
(다행히도 그에게서 별다른 악의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카무이"그럼 나한테 설명해 봐."

마타코"에...? 그러니까, 그게..."

(나는 두근거리는 자신의 심장을 달래며 침착해지려 애썼다.)
(언제나 그의 앞에서 겁 먹거나 당황해선 안 된다고,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그러면 귀병대 간부의 체면이 서지 않는다며, 자신을 다그쳤다.)

마타코"남자는 여자를 사랑하지만, 그녀를 행복하게 해 줄 자신이 없는 거에요. 그래서 그녀가 떠나길 바라는 거고, 그렇게 다른 사람을 만나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라는 거죠.

왜... 사랑은 떠나보낼 때 더욱 간절해진다고 하잖아요.

아무리 깊은 감정이라도 남녀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서로의 마음에 많은 상처를 남기게 되지만...

그 마음이 최고조에 달하는 순간 상대방과 이별하게 되면
당시의 감정을 흠 하나 내지 않고 영원히 간직할 수 있어요.

그리움이란 해소 되지 않으면 끝 없이 반복 되는 것이고...
슬프긴 해도 사실상 그보다 온전한 사랑은 없으니까요.

남자에게 있어선 그것이 여자를 위한 최선의 배려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결국엔 사랑하지만 보낸다는 말이 맞는 거죠."

카무이"........."
다섯 번째 이야기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