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무이"나야, 잠깐 들어가도 될까?"
("응...")
(문 너머로부터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
(그 작은 목소리에도, 내 심장은 격렬하게 반응한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 만큼.)
카무이"그럼 들어갈게 - ."
덜컥 - .
("..........")
(그녀는 침대 위에 다소곳이 앉아 방 안으로 들어서는 나를 향해 아무런 제스처도 없이 인사를 건네듯 시선을 보냈다.)
(너무 소극적인 반응이라 아쉽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도 가슴이 설렜다.)
카무이"뭐하고 있었어?"
("그냥 책을 좀 읽고 있었어.")
(그녀의 손에 들려 있는 작은 책. 무슨 내용일까, 아주 잠깐 호기심이 생겼지만)
(책의 표지에 새겨져 있는 지구인의 언어를 발견하고나서 묻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카무이"점심은 먹었어?"
(그래서 주제를 다른 곳으로 돌려버렸다.)
("응.")
카무이"다행이다. 그보다, 저녁 말이야... 같이 먹고 싶었는데, 약속이 있어서 오늘은 안 될 것 같아."
("그래...")
카무이"같이 있을 수 없게 되었으니까, 내일은 같이 산책이라도 할까?"
("그치만 햇빛이... 힘들지 않겠어?")
카무이"너와 함께 걷는 거라면 아무래도 좋아."
("...알았어. 그럼 가자.")
(나를 향한 그녀의 태도는 마치 나에게 애정이라도 품고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녀의 말과 행동이 가식으로 물들어 있다는 것쯤은, 그녀의 표정과 눈빛을 보고서 알 수 있다.)
("지금 깨달았는데... 나 실은...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어.")
("모든걸 잃어서... 괴로워서... 깨닫지 못했지만... 좋아하고 있었어... 그사람을...")
("잊어버리고 있었지만... 그 사람의 상처에서 피가 새어나오는 걸 보고 깨달았어. 가슴이 아프다는걸... 사실은 좋아하고 있었다는걸...")
("언제나 눈을 감으면 꿈속에서 누군가의 손길이 느껴졌어... 아무리 떠올리려고 해도 떠오르지 않았지만... 이젠 알 것 같아. 그건... 카무이였어.")
("좋아해...")
("좋아해, 카무이...... 처음 널 만났을 때부터... 쭉......")(잠시나마 그런 뻔한 거짓말들을 진심이라고 믿었던 내가 어리석었다.)
(그녀는 타카스기녀석이 상처입는 걸 보고싶지 않았을 뿐... 사실 나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러니 그런 거짓말을 내뱉을 수가 있었던 거다.)
(지금도 그녀는 나와 눈을 똑바로 마주치지 못한다.)
(계속해서 내 시선을 피하고 있을 뿐.)
카무이"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괜찮을까?"
("...?")
(그녀는 그제서야 고개를 들어올려 나와 마주보았다.)
(그다지 관심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조금 우울해질 법도 했지만, 나는 애써 웃어보였다.)
카무이"타카스기녀석과... 어떤 사이였어?"
("어떤 사이였냐니... 이미 알고 있잖아, 친구였어.")
카무이"...그치만 단순한 친구로는 안 보이던걸."
(그녀에게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이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것이나 다름 없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더이상 참아내기에는 가슴이 미치도록 답답했다.)
("좋아했어...")
카무이"네가...? 아님 그녀석이?"
("내가...")
(나는 이렇게 웃고 있는데, 어째서 상황은 언제나 전혀 즐겁지 않은 분위기로 흘러가는 걸까.)
카무이"얼마나?"
("많이...")
카무이"그럼 난... 그녀석에 비하면 어떤데?"
(".........")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돌아올 대답은 뻔한 질문들이 입 밖으로 마구 새어나오려 했다.)
(더이상은 그렇게 하지 않도록, 자기 자신을 통제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카무이"그럼..."
(나는 떠나기 전 그녀의 뺨에 입을 맞췄다.)
쪽 - .
카무이"난 이만 가볼 테니까... 편하게 쉬어."
(문득 시야에 들어온 그녀의 눈동자는 절망감과도 같은 어두운 감정을 비추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