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추 보아도 비싸다는 걸 알만한 반짝반짝한 술병-

술을 좋아하는 지인에게 선물로 받은 만큼, 그와 나눠 마시자는 뜻에서 술병을 들고 그의 방으로 향했고,

문을 박차고 들어가 식탁 위에 술을 턱하니 올리며 의기양양하게 그를 쳐다보니,

그는 갑자기 무슨 영문이냐는 표정으로 술병과 나를 번갈아 쳐다봤다.




「 …술? 어디서 구했어? 」




그는 술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좋아하지 않았지,

결코 애주가는 아니었다. 초등학생 입맛 탓도 있고….

웬만큼 달거나 도수가 낮지 않은 이상 싫은 티를 선연히 내며 마시기를 거부하는 성향인 터라 조금 걱정됐지만...



'쪼로록-'




조용히 술을 따라 입 안으로 털어넣던 그는 생각보다 이 술자리가 마음에 든 듯 했다.

그가 저렇게 먹을 정도라면 못 먹을 맛은 아닐 거다싶어, 이어 내 잔에도 술을 따랐다.




「 이거, 쓰긴 한데 향이 좋아. 」





아무래도 엘런은 비싼 술을 알아보는 재주가 있는 모양이다. 향에 취하고 술에 취하고-

두 세잔 부터는 적당히 달아올라 수다를 떨기에 바빴는데,

언젠가부터 슬슬 둘 다 말없이 잔에 술을 따르기 바빴다. 마시기 대결이라도 하는 것마냥.




" ……. "




술을 접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주량이 셀 턱이 없다.

게다가 물을 타는 주점의 술과는 비교할 수 없이 도수가 높았다.

달아오른 온 몸이 후끈하고 발갛다.


그나마 어떻게든 정신을 차린 뒤 자리를 정리하려 손 부채질을 하고 있는 내 앞쪽으로,

그는 와이셔츠 단추를 서 너개 풀고 상 위에 쿵 머리를 기댔다.


조심성없는 부딪힘으로 상 위에 위태롭게 올려져 있던 술잔이 넘어가 쏟아졌다.

훅 끼치는 알콜 냄새가 거슬리긴 했으나, 시원하고 노곤하니 곧장 치울 맘이 들지 않았다.

흘려진 술에 닿아있는 손을 빼지도 않는 꼴을 누가 보았다면, 분명 한 소리 했겠지만.

… 애초에 이 방에 제 정신인 사람은 없는데 뭐 어때!



술 기운에 취해 마냥 비실비실 앉아있던 도중에, 갑작스레 한 쪽 팔이 훅 아래로 잡아 끌렸다.

다소 뜬금없었지만 다정스런 움직임이었다. 살랑대는 엘런의 머리칼이 눈가로 스쳐갔다. 취한 그가 내 입꼬리 위로 가볍게 입술을 부볐던 탓이다.

깜짝 놀라 그에게 시선을 돌리니,

제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기나 할까 싶을 정도로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지독한 술 냄새와 숨소리 뿐인 방안에 시선이 뒤엉킨다.


이후의 기억은 없다. 바로 필름이 끊겼다.



♥술을 마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