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 나 내일 생일이야. ”
아, 내일은 비가 온대. ㅡ딱 그 정도의 목소리와 어투로 카무이가 쉽게 말했다.
봄이라고 하기엔 너무 늦고 여름이라고 말하긴 또 어중간한 시기였다. 햇볕이 너무 뜨겁고 눈부셨다. 이게 무슨 계절의 여왕이냐고, 지구의 오월에 지대한 기대를 품고 있던 카무이는 요 며칠 쉬지 않고 조잘조잘 이 때 이른 더위에 대한 불만을 하염 없이 토로해댔다. 우주 정 반대편에서 날아왔다는 이 야토족 소년은 유약하고 섬세한 생김새만큼이나 여름과 더위, 그리고 밝은 태양빛에 유난히도 무력해했다.
ㅡ내가 이걸 벌써 꺼내게 될 줄은 몰랐는데.
오늘 아침, 한껏 구시렁거리며 겨울 내 옷장 깊숙이에 박아 두었던 햇빛가리개를 챙겨 온 몸에 휘감은 카무이는 이것만으론 부족하다며 자주색의 커다란 우산까지 꺼내어 썼다. 그리곤 심심할 때마다 한 번씩 아부토를 시켜 주방 냉장고에서 아이스크림을 조달해왔다. 카무이가 앉아있던 난간 밑은 이미 먹고 버린 아이스크림의 껍데기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좀 치우지, 하는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기도 잠시, 어깨를 으쓱한 카무이가 “ 여긴 내 밴데? 내 땅에 내가 쓰레기 버리는 게 뭐가 나빠. ” 하고 일침을 둔 탓에 그 건에 대해선 빠르게 포기하고 자신이 치우기로 결심하였다. 카무이는 여전히 안하무인에 제멋대로였고 그런 주제에 참 반짝 반짝했다. 그 겨울 부터 이 때 늦은 봄까지, 그와 그녀의 일상은 이런 하루 하루들의 연속이었다.
하여튼 간에 그런 하루들 가운데에서도 유독 유별나던 오월에 끝물, 카무이는 몹시도 나태하고 무기력해졌다. 그 와중에 사건이 터진 것이다. “ 그래서, 나 내일이 생일이야. ”
“ 진짜야. 아부토한테 가서 물어봐도 돼. ”
거짓말 아니라고, 쭈쭈바를 입에 문 카무이가 히죽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카무이의 얼굴은 한층 더 투명한 색을 띠웠다. 열일곱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가느다란 선을 가진 소년은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웃어야 더 효과적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고, 눈앞의 아이는 자신이 아는 이들 중에서도 특별히 더 이런 종류의 미소에 약했다. 역시나, 갑작스런 생일 발표에 가뜩이나 황당해하던 아이의 얼굴이 눈에 띠게 동요하기 시작했다. 아, 좋다. 카무이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눈치를 많이 봐서 그런지 원래 성격이 그런지, 모든 일에 대체로 얌전한 아이는 좀처럼 얼굴 위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법이 없었다. 그래서 카무이는 종종, 아니 꽤 자주, 죄 없는 그녀를 지금처럼 일부러 골탕 먹이곤 하였다.
뭔가 더 해주지 않으려나.
아이의 반응을 기대하면서, 입 안 가득 쏟아 부은 아이스크림을 살살 녹여 먹으며 카무이는 느긋하게 시간을 허비했다. 자작자작한 얼음 알갱이들이 혓바닥에 닿기가 무섭게 빠르게 녹아내렸다.
소다 맛의 냉랭한 달콤함을 한껏 음미하고 있자니 옆에서 툭, 조심스런 목소리가 흘러들어왔다.
“ 선물이라던가…. 뭔가, 나한테 바라는 거라도 있어? ”
“ 아~아, 글쎄애~ ”
말 그대로 ' 글쎄 ' 였다.
원하는 게 없어서가 아니라, 바라는 것이 너무 많아서.
지구의 볼품없는 여자아이, 조금 반반한 얼굴의 나이 어린 계집, 아이를 쫓아다니는 꼬리표는 항상 초라했지만 그건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의 말들이었다. 카무이에게 그녀는 늘 욕망의 산 증거였다. 고작해야 사람에게 이런 간절함을 느끼게 될 줄은, 바로 저번 겨울까지만 해도 상상조차 못했는데. 그냥 그랬다. 한 번 눈길이 가고 나니 나중에는 보이는 전부에 매료되었다. 정말ㅡ, 한 입에 꿀꺽,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한 입에 삼켜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피에 굶주리고 강함에 목말라했던 사내의 본능이 이제는 온전히 그 애 한 사람만을 향하였다. 원래도 제정신은 아니었지만 카무이는 지금의 자신이 조금 미친 것 같다고 생각했다.
“ 그럼 이렇게 하자, ( - ). ”
카무이가 입을 열었다. 열린 입술 사이로 달달한 소다 향이 담뿍 배어났다
“ 다른 건 다 필요 없고 생일선물로, 앞으로 1년 동안 귀병대 안 가기. 어때? ”
“ ㅡ기각. ”
“ 엑, 어째서!? ”
“ 선물 내용이 이상해. 기각. ”
“ 하나도 안 이상해! 승낙, 승낙!! ”
“ 승나ㅡ악!! ” 나는 이미 돈도 많고 가진 것도 많아서 다른 선물은 필요 없다고, 카무이가 잔뜩 격양된 목소리로 왈칵 소리쳤다. 함박 만하게 벌린 입에서 주룩, 다 먹어 쭈글쭈글해진 쭈쭈바가 힘없이 미끄러졌다. 아… 쓰레기가 또……. 난간 밑으로 빠르게 사라지는 그것을 보며 아이가 안타깝게 중얼거렸다. 난간 밑 쓰레기를 치우는 일도 격양 된 카무이를 달래는 일도 모두 그녀만의 몫이었다. 유월을 목전에 앞둔 어느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