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뭐랄까, 우연이라 말하기도 민망할 만큼 기가 막힌 약속 방법이었다.



그가 눈을 뜬 곳은 구 뉴욕의 마천루 앞이었다. 헬사렘즈 로트의 밤은 대체로 춥고, 삭막하고, 그런 주제에 크고 낮은 건물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들로 하여금 오 만 가지 색으로 바쁘게 반짝거렸다.

윌리엄 얜 또 왜 여기 있던 거래?

몸을 차지할 때마다 떠올리는 이 질문에 사실 큰 의미는 없다. 윌리엄을 향한 궁금증은 문득 떠올랐던 것만큼이나 문득 사그라들기 때문에 특별히 크게 신경 쓸 부분은 아니었다.



오랜만에 나온 바깥은 불과 며칠 전과 비교해도 확연히 더 추워져 있었다.
지긋지긋하던 여름을 떠나보낸 도시는 벌써부터 장갑이며 목도리며, 선명해진 입김만큼이나 성큼 다가온 월동 준비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보였다. 국적과 성별, 그리고 종족을 떠나, 거리를 오가는 많은 이들이 한 겨울의 산타클로스 같은 뚱뚱한 복장으로 종종걸음을 옮겼다. 허망하다. 몇 번째인지조차 모를 성야는 그에게 더 이상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했다.


멀뚱히 길 한복판에 서 있던 그가 문득 제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든 것 없이 텅텅 비어있는 손 끝은 이미 옛 저녁부터 백지장처럼 질린 상태이다.
쇼윈도에 비친 윌리엄의 몸은 얇은 민트색 스웨터에 단출한 코트가 걸치고 있는 전부였다.


몰아치는 바람이 성난 짐승마냥 몹시도 거칠었다.


급하게 뛰쳐나온 건지 아님 아주 잠깐만 나올 속셈이었는지, 어찌 됐든 그는 몸도 비리비리한 주제에 날씨와 어울리지도 않는 옷차림을 하고 밖으로 기어 나온 윌리엄이 사뭇 원망스러워졌다. 펄럭이는 코트의 앞을 억지로 여미고서, 양 주먹을 주머니에 구겨 넣었다.
멍청이. 앞으로 한 번만 더 이 꼴로 나돌아 다니면, 그 땐 정말로 가만 두지 않겠어.


벌어진 잇새로 순백의 제법 흉흉한 숨이 가느다랗게 흘러 나왔다. 근래 들어 윌리엄이 가장 한심하던 순간이었다. ㅡ응그러 쥔 주먹 그 끝 자락에, 내내 잠들어 있던 쪽지 조각이 닿기 직전까진.

한밤에 양을 치는 자1